체리필터 "록음악 고집하는 자세 담았다"

 TV 가요프로, 인디밴드에 다시 문열었다

(서울=연합뉴스) "굉장히 록적이어서가 아니라, 록을 고집하고 싶은 우리의 자세를 뜻하는 거죠."

4인조 밴드 체리필터(조유진 32, 정우진 33, 연윤근 33, 손상혁 32)는 5집 '록스테릭(Rocksteric)'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록(Rock)과 히스테릭(Histeric)을 조합해 '발작적인 록'을 뜻하는 제목을 붙인 만큼, 5집은 첫 트랙 '이물질(異物質)'부터 강렬하게 시작된다. 굵고 거친 전자 기타, 탐탐과 심벌을 정신없이 오가는 드럼, 소름끼칠 듯 엷은 음색에서 폭발하는 보컬은 하드코어 록의 전형이다.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법하다.

그간의 히트곡인 '오리 날다', '낭만 고양이' 류의 동화 같은 귀여움도 벗었다. 사실 이들은 지난 음반들에도 강한 록이 많았지만 타이틀곡이 두드러져 팀 색깔로 굳어졌다며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심지어 언더그라운드 밴드들로부터는 '변절했다'는 손가락질도 받았다고 한다.

5집은 록을 근간으로 펑크, 테크노, 팝 등을 조합해 장르의 한계를 확장했다. 멤버들은 음반에서 가장 비(非) 록적인 곡으로 타이틀곡 '피아니시모(Pianissimo)'를 꼽았다.

"'피아니시모'는 어쩌면 가장 실험적이고 도전정신이 빛나는 트랙이죠. 비(非) 록적이면서도 록의 굵은 선이 전면으로 튀어나왔어요. 동양적인 멜로디, 16비트의 댄스곡 같은 리듬감이 가미돼 독한 향수같죠."(기타 정우진)

멤버들은 새 음반을 준비하며 '낭만 고양이'의 아류를 노래할 것이냐,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냐로 고민했다고 한다.

보컬 조유진은 "음악을 내고 민망하거나 후회하기 싫었다"며 "잘하면 당연하고 못하면 큰일 나지 않나. 심사숙고하게 되더라"고 웃었다.

자연스레 얘기는 록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흘렀다.

드럼의 손상혁은 "록은 원초적인 소리를 내는 사람의 순수한 에너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자 조유진은 좀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었다.

"록은 태생이 반항적이고 창조적이죠. 다른 장르에 비해 음이 스트레이트하고, 생동감이 있죠. 음악적인 부분에서 보면 진짜 악기가 많이 표현돼 사운드가 보컬만큼 존재감이 있어요. 기타, 베이스 소리에 민감한데 음반에는 악기 연주가 살아있도록 담으려고 노력한 음반이죠."

이러한 생각들을 담으려니 싱글, 미니 음반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음반시장에 역행하는 정규 음반을 내려고 서교동에 녹음실을 마련했다.

베이스의 연윤근은 "현실에 타협해 적당한 품질의 디지털 싱글을 내는 것보다 좋은 사운드를 지닌 음반을 내기로 했다"며 "예전에는 영화를 만드는 기분이었지만 이제 드라마를 만드는 기분이 되는 게 싫었다. 듣는 즐거움을 주는 음반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음악에 대한 멤버들의 주관은 공통분모가 뚜렷했다. 1997년 인디밴드로 결성돼 2000년 1집을 내며 12년간 팀이 유지된 비결이다.

조유진은 "우리는 음악을 전문으로 하기 위해 모인 팀이 아니었다"며 "악기 소리를 제대로 내는 사람도 없었다. 업이 아니라, 실력이 미천한 사람들끼리 취미, 놀이로 즐기려고 밴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정우진은 "1집을 내며 프로 의식을 갖게 됐고 확실한 우리의 미래로 인정하게 됐다"며 "하지만 벤츠 타고 넓은 집에 살려고 음악하려 한다면 힘들어진다. 음악은 우리에게 여전히 원초적인 놀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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