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 앞에서

수많은 묘비명을 본다

목어의 눈부심

제 뼈와 살을 빚어

행간과 행간 사이에 촘촘히

써내려간 숲

저녁 물결로 일렁이는

가지 끝 솔바람 고요하다

물관을 타고 흐르는

시계의 초침소리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이와

이제 막 얼굴을 익힌 이와

내 가난한 서가 어디쯤에서

깨어 있는 하늘 보인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제각각 속내의 결 따라

잠들지 않는 밤

뼛속까지 나를 탁본한다

 

유회숙

<시인 약력> 충북 청주 출생 / ‘자유문학’으로 등단 / 시집 ‘흔들리는 오후’ ‘꽃의 지문을 쓴다’ ‘나비1 나비3’ / 한국문인협회·한국현대시인협회·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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