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해 덕담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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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경인(庚寅)년 화두(話頭)로 ‘일로영일(一勞永逸)’을 내놓았다. 100년 전 경술국치, 60년 전 6·25전쟁을 상기시키는 올해 2010년 사자성어로 의미심장하다. 60년 만에 맞이한 호랑이 해 특히 백호(白虎)의 해에 희망을 준다. ‘일로영일’은 중국 북위 학자 가사협의 <제민요술(濟民要術)>과 <명사(明史)> ‘증예전(曾銳傳)’에 나온다. ‘지금의 노고를 통해 이후 오랫동안 안락을 누린다’는 말이다.

 

이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 등과 관련해 “지금 욕을 먹더라도 국가 발전의 디딤돌을 마련하겠다”고 수차례 밝힌 것과 무관하지 않다. 비장하다.

 

‘화두’는 불교의 참선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참구(參究 )하는 문제다. ‘공안(公案)’· ‘고칙(古則)’이라고도 한다. 글자 그대로 ‘화두’의 ‘화’는 말, ‘두’는 머리, 즉 앞서간다는 뜻이다. 화두는 말보다 앞서 가는 것, 언어 이전의 소식이다. 참된 도(道) , 길을 밝히는 말이다. ‘공안’의 ‘공’은 ‘공중(公衆)’, ‘누구든지’이고 ‘안’은 방안이다. 누구든지 이대로만 하면 성불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불교 선종(禪宗)의 조사(祖師)들이 만들어낸 화두의 종류는 1천700여 종류에 이른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 참선수행자들이 널리 채택하여 참구한 화두로는 ‘개에게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 ‘이 무엇고?(是甚?)’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 ‘삼 서근(麻三斤)’ ‘마른 똥막대기(건시궐(乾屎木厥)’ 등이다.

 

‘구자무불성’은 ‘무자화두(無字話頭)’다. 우리나라의 고승들이 이 화두를 참구하고 가장 많이 도를 깨달았다고 한다. 한 승려가 조주(趙州)스님을 찾아가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를 물었을 때 “무(無)”라고 답하여 이 화두가 생겨났다. ‘부처님은 일체 중생에게 틀림 없이 불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조주스님은 왜 없다고 하였는가’를 의심하는 것이 무자화두법이다. 마른 똥막대기 ‘건시궐’은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하는 물음에 문언선사(文偃禪師)가 답한 화두다. 화두는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다. 오묘한 문답에 의문을 일으켜 그 해답을 구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2010년 화두 ‘일로영일’도 그와 같다. 재임 중 각고의 헌신을 다해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다음 정부와 세대에게 선진일류국가를 물려주자는 각오가 담겼다. 국격 향상의 역사적 전환점이 될 2010년을 맞아 누적된 잘못과 구조적인 문제점을 바로 잡는 고된 일을 미루지 않고 해결하겠다는 결의의 표명이다.

 

전대미문의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가꾸기 위해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열심히 일해나가자는 당부도 포함됐다. ‘누구든지 이대로만 하면 성불할 수 있다’는 ‘공안’의 의미를 살렸다. 바로 ‘상생(相生)’을 염원하는 화두다.

 

이 대통령은 대선이 치러진 2007년 ‘백성이 도탄에 빠지면 하늘이 백성의 뜻을 살펴 비를 내린다’는 ‘한천작우(旱天作雨)’를 화두로 천명했다. 집권 첫해인 2008년에는 ‘화합의 시대를 열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는 ‘시화연풍(時和年豊)’을. 지난해엔 ‘위기를 맞아 잘못을 바로잡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부위정경(扶危定傾)’을 화두로 삼았었다.

 

마침 이 대통령의 화두에 화답하듯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강구연월(康衢煙月)’을 선정했다. ‘번화한 거리의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을 뚯하는 강구연월은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열자(列子)의 ‘중니’ 편에 나오는 ‘강구요(康衢謠)’에서 유래한다.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된 요 임금이 민심을 살펴보려고 평복 차림으로 번화한 거리에 나갔는데 아이들이 “우리 백성을 살게 해 주심은 임금의 지극한 덕”이라는 동요를 불렀다고 한다. 그 이후로 강구연월은 태평한 세상의 평화로운 풍경을 이르는 말로 사용됐다.

 

자고이래로 태평성대엔 물론이거니와 사람들은 삶이 어려울수록 강구연월을 꿈꾼다. 슬기로운 집권자를 기다리고 따른다.

 

이 대통령의 신년 화두 ‘일로영일’과 교수신문의 사자성어 ‘강구연월’이 같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많은 사람들이 덕담을 이어가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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