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 없는 박수 소리가 들렸다. 밤 열 한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에 웬 박수? 간혹 스포츠 경기 중계가 있을 때 들을 수 있는데 그 날은 그런 예고가 없었다. 거실에서는 두 딸아이가 TV를 보고 있었다. 면학분위기를 조성한답시고 TV연결선을 없앤지 오래 됐는데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친구들과 대화가 안된다는 항의에 제한시간을 두고 선을 연결했다.
사실 우리네 아이들만큼 고단한 아이들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학교를 갔다 와서는 가방을 내려 놓기 무섭게 학원을 전전하고 늦은 밤이 돼서야 집에 돌아오면 또 공부하란 소릴 귀가 따갑게 들어야 한다. 말로는 다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에서 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꼭 그래서만 이겠는가. 부모의 욕심이 정말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뭣 때문에 박수까지 치게 됐는지 궁금했다. 드라마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 주 월요일로 기억된다. 방학이 시작되고부터 퇴근해 집에 들어서면 컴퓨터를 하거나 주로 게임을 하는 모습만 봤는데 그 날은 달랐다. 현관에 들어섰는데 집안이 너무나도 조용했다. 게임을 할 때면 늘상 투덕거리는 소란함이 있었던 터라 의아한 마음에 아이들의 방문부터 열었다. 놀랍게도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곤 이유를 묻기도 전에 “열시부터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를 봐야하는데 시간제한에 걸려 엄마한테 잘보이려고 한다”는 대답이 동시에 돌아왔다. 그 절실함이 가상해 허락한 드라마가 바로 KBS 월화극 ‘공부의 신’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드라마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공부의 신이 돼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였다.
드라마는 지난 12일 방송 4회 만에 시청률 26.3%로 월화극 1위를 차지하며 연초부터 공부의 신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박수를 유도한 이날 방송은 열등생 홍찬두(이현우 분)가 유학을 가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맞서 수학 시험 80점 이상을 받으면 천하대 특별반에 남는다는 조건으로 공부에 매진한다는 내용이었다. 역대 수학 최고 점수가 52점에 불과한 찬두에겐 거의 불가능한 일. 전설적인 입시 수학 선생 차기봉(변희봉)은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찬두에게 필요했던 건 공부를 못한다는 것에 대한 분한 마음과 집중력이었던 것. 차기봉은 찬두를 체육관으로 불러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추운 날씨속에서 끊임없이 시험 문제를 풀게 한다. 찬두는 결국 100점을 맞게 되고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성취감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일본 만화 ‘꼴찌, 동경대 가다’를 원작으로 한 공부의 신은 ‘꼴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폐교 위기에 놓인 삼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의협심 넘치는 변호사 강석호(김수로 분)가 오합지졸 고3 다섯 명을 최고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특별반을 결성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다섯명은 명문대에 입학, 꼴찌 인생을 탈출한다는 설정이다.
내용 전개로 봐서는 공부 지상주의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드라마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보이스 비 앰비셔스(Boys be ambitious)’,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다. 누구든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만큼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한번 해보라는 강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공부의 신은 이제 16부 중 4회를 보여줬지만 불륜이나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막장드라마의 홍수속에 학습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서의 참신성을 갖고 있다. 연초부터 웬 공부타령이냐고 할 수 있지만 ‘난 안돼’라는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많은 청소년들이 드라마를 보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정신을 갖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어 보인다. /박정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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