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모임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택시를 탔다. 그날따라 유난히 가는 곳마다 교통신호에 걸렸다. 택시운전자분도 처음엔 신호를 지키더니 나중엔 짜증스럽다는 듯이 빨간 신호등 임에도 요령껏(?) 지나갔다. 물론 늦은 시간이라 거리도 한산하고 행인도 없었지만 그래도 신호는 지켜야 되지 않느냐는 나의 핀잔어린 말 건넴에, 이 늦은 시간에 신호가 왜 꼭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한번만 신호를 어기면 다음 신호부터는 안 걸린다고 했다. 또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그분의 입장이 조금은 이해된다.
택시운전자의 신호위반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분의 주장에 대해서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즉 통행량이 많은 도로를 중심으로 연등 신호체계를 만들면 과속이나 신호위반을 할 필요가 없다. 규정속도를 지켜서 갔을 때 연등신호를 받을 수 있어 오히려 더 목적지에 빨리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대별로 신호등의 순환주기를 달리할 필요가 있으나 교통량이 적은 야간 시간대에도 주간과 똑같이 신호 대기시간이 길기 때문에 위반을 하게 된다. 또한 우리같이 전자 시스템 산업이 뛰어난 나라에서 왜 차량(또는 보행자) 자동인식 장치를 안하는지 모르겠다. 독일의 경우를 예를 들면 보행자가 드문 야간에는 보행자가 버튼을 누를 경우에만 빨간불이 들어오고 그 외는 주행신호가 유지된다.
법이나 질서를 지키라고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준수하는 것이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올바른 제도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요즘 애완동물을 기르는 가정이 늘면서 공원이나 산책로에서 가끔 배설물 때문에 언짢은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애완동물을 데리고 산책할 때는 비닐봉투를 준비하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 자세라는 글도 곳곳에 보인다. 이는 유럽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와 유럽 사회는 “지키라고 강조하는 것과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에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네덜란드의 공원이나 해변에는 곳곳에 견공들의 배설물 처리에 필요한 비닐봉투를 빼서 사용할수 있도록 장치가 돼 있다. 혹시 집에서 나올 때 준비하는 것을 잊었다 하더라도 거리에 비치가 돼 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처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한가지 더 예를 들면, 외국의 어디를 가도 한국의 거리만큼 깨끗한 도시는 드물다. 더구나 언제부턴가 쓰레기통을 발견하기 힘든 우리 사회의 실정을 생각할 때, 우리의 시민의식이 미성숙하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 쓰레기를 거리에 버리지 말라고 강조하기 보다는 버리지 않도록 쓰레기통을 설치해 주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제도’인 것이다.
그럼 사회질서는 제도(화)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가? 아니다! 제도는 단지 생활 세계, 즉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한 제도가 아닌 오히려 인간의 삶을 통제하는 제도가 돼서는 안된다. 독일의 사회학자 유르겐 하버마스(Juergen Habermas)가 “합리성을 강조하는 현대사회는 제도가 생활세계를 식민화 했다”고 비판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어차피 교통신호를 언급했으니까 교통 시스템과 관련해서 독일에서의 경험을 하나 더 소개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주 위반하는 일방통행 도로가 있을 경우, 경찰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위반자를 적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도로를 아예 양방통행으로 바꾸어준다.
이것이 바로 ‘제도와 생활세계의 사이’에 놓여있는 우리의 고민일 것이다.
/최순종 경기대 사회과학대학 청소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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