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와 거짓말 공약

이용성 경제부장 leeys@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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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을 돋구는 음식중에 싱싱한 꽃게가 들어간 탕과 찜을 꼽는 미식가들이 많다. 통통한 하얀 속살을 콱하고 베어 먹는 즐거움을 벗삼아 소주한잔의 쾌감(?)은 어느 음식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게 ‘꽃게 마니아’들의 표현이다.

 

하지만 기자는 구토와 온몸의 두드러기를 동반한 알러지로 인해 꽂게를 안 먹는다. 아니 못 먹는다. 여섯살 어린나이에 무심코 뱉어버린 거짓말 한마디가 평생 꽃게를 즐길 수 없도록 옭아 매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꼬마 때 종이봉투에 담긴 꽃게 몇마리를 들고 오는 심부름을 하다 꽃게를 개똥 위에 떨어드리는 대형사고를 저질렀다.

 

당시 호통의 1인자 아버지 꾸중에 겁이 난 기자는 몰래 수돗물로 꽃게를 대충 씻는 응급처치를 한 다음 “왜 봉투가 찢어졌냐”는 갑작스런 질문에도 한마리만 길바닥에 떨어진 것처럼 거짓말을 해버렸다.

 

이 때문에 밥상에 올라온 개똥 묻은 꽃게탕을 “혹시 거짓말이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먹은 뒤 온 몸이 붉게 변해버리는 ‘꽃게 알러지’가 발생하는 벌을 받게 됐다. 훗날 자수해서 광명찾자는 심정으로 개똥 사건을 실토했건만 여전히 꽃게는 입에 대지 못한다.

 

순간적인 한번의 거짓말이 평생 동안 떨쳐 버릴 수 없는 알러지 고통을 안겨 준 것이다.

 

어린시절 웃지 못할 헤프닝을 새삼스럽게 들추는 것은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정치인들의 행보가 분주해 지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느끼는 정치인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부정적인 이유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상당수는 정치인의 거짓말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말을 바꾸는 등을 포괄적으로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어린시절 거짓말은 평생의 고통이 됐는데 이들은 반복되는 거짓말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더욱이 경제적인 중요성이 커지면서 정치인들의 경제에 대한 공약이 늘어나고 이 중 허무맹랑한 거짓말 약속도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일자리 만들기, 중소기업 살리기 등 구체적인 대안이나 비전도 없이 용어만 나열하는 경우가 많다.

 

청년 실업자들은 거짓말이라고 느끼면서도 일자리에 표를 주고, 날품 노동자는 경기회복에 마음을 주게 된다. 정치인들도 할 말은 있다. 표에 도움이 된다면 실현 가능성을 떠나서라도 나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공약을 서로 베끼기 시작하고 선거가 막판으로 치달으면 여·야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공약이 같아지는 현상까지 빚어진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비 후보자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국민소득 몇만불이니, 수십만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느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밥을 주겠다느니, 대기업과 연관된 프로젝트 성사 등 실현 불가능한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같이 거짓말로 가득찬 정치인의 뻥공약은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많은 거짓말 범죄와도 연관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거짓말 범죄(위증·사기 등)가 일본을 비롯 OECD 국가들에 비해 매우 높고 특히 위증은 일본의 경우 연간 10여건 이내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천여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거짓말 범죄는 줄어들기보다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정치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는 없지만 거짓말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이 같은 현상을 가져온 것만은 분명하다.

 

선거를 앞두고 기자는 거짓말 공약을 범죄로 처벌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허황된 공약의 크기만큼 형량도 달라지는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어본다. 결국 정치인에게 내릴 수 있는 형량이 지지표인데 이번 6·2 지방선거는 후보자의 거짓말을 유권자가 꼼꼼하게 가려내 심판하는 선거가 되길 기대해 본다.

/이용성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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