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이화은의 시 ‘등뒤’를 읽었다. ‘요즘 아들은 뭐 하시나?/ 전에 하던 거,/ 전에 뭐 했는데?/ 놀았어,/ 마흔이 다 된 아들이/ 어머니와 어머니 동무의 주거니 받거니를/ 등 뒤로 듣고/ 다 듣고/ 등이 시려 그 등짝에 박힌 얼음이/ 십수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다는데/ 제 등골의 얼음골에 숨어 /더운 한 시절 / 아직도/ 잘 놀며 지낸다는데’
잘 놀며 지낸다는 마흔이 다 된 아들의 이야기가 담긴 이 시를 읽으며 어제 이발을 하러 갔을 때 이발관 주인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좋은 대학을 나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기업체에 입사해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아버지는 아들의 적성과 장래문제를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끈질긴 설득과 노력으로 아들의 직업을 바꿨다. 아들은 서비스 업종을 택했고 지난 5년 동안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고 한다. 노력의 끝은 달콤했다. 아들은 서른 초반의 나이에 이미 자신의 길을 찾았고 화성 신도시인 동탄의 중심지에서 헤어디자이너로 자신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필자는 이 얘기 끝에 ‘바람의 아들’ 양용은을 떠올렸다. 양용은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를 꺾고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했다. 언론은 독보적 존재로 여겨졌던 타이거 우즈가 꺾였다고, 메이저 골프대회에서 이변이 일어났다고 세계가 떠들썩하도록 대서특필 했다. 분명 본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큰 자랑이고 골프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쾌거였다.
양용은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잘하는 운동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골프가 어떻게 하는 운동인지도 모르던 그 였지만 무작정 골프장을 찾아가 허드렛일을 하는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농사를 짓던 그의 아버지는 “네가 제정신이냐, 골프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돈 있는 사람이나 하는 운동이다. 당장 그만 두라”고 아주 심하게 나무랐다고 한다. 양용은은 19세에 골프장 볼보이가 되어 낮에는 골프공을 줍고 밤에는 쉬지 않고 연습을 했다. 현재 나이 37세의 양용은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18년간을 오직 공과 함께 살아왔다. 적성도 어느정도는 맞았겠지만 끈질긴 노력이 세계의 이변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제 기적을 촉발시켰던 1960년대 독일로 외화벌이를 떠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던 때가 있었다. 당시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연탄에 손을 비벼 검고 투박한 손을 만들어 면접을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해서 독일로 간 광부들은 섭씨 32도, 1천500미터 지하 막장에서 고생해 마르크화를 벌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 애국가를 연주하자 애국가 대신 광부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들이 라인강에 뿌린 피와 같은 땀은 우리나라 경제의 밑바탕이 됐다.
요사이 고급 실업자가 늘어나고 운만 좋으면 일확천금도 가능하다는 사행심이 사회에 만연한 현실이 걱정스럽다. 사람이 자신을 바로 세우고 바꾸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적성에 맞는 일로 자신의 위치를 정하고 비록 작은 것이라도 최고가 되기 위해 장인정신의 결연한 자세로 되돌아 간다면 인생에서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 장인들이 우리의 희망이고 자랑이라는 인식이 사회에 널리 뿌리내려야 한다. 많이 배우고도 일자리를 찾지못해 부모의 마음을 애태우기 보다는 남의 머리를 만지면서도 예술가라는 자부심으로 장인이 되어 가는 아들, 아버지의 염려에도 자신의 굳은 신념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양용은의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박무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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