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낙태(落胎)가 또하나의 사회적 이슈로 떠올라 찬반 논란이 뜨겁다.
프로라이프(Prolife) 의사회에선 ‘낙태는 여성의 권리를 앞세워 생명권을 무시한 처사’라고 반대하는가 하면, 여성계에선 ‘여성의 몸에 대한 결정권은 여성에게 있다’며 원치않는 임신의 낙태는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누구도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잘라 말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낙태 논란은 ‘뜨거운 감자’가 됐다. 뾰족한 해법을 찾기 어렵고, 논쟁도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죽음으로 가는 태아 하루 1천건, 연간 낙태 건수 35만건. 2005년 보건복지부 통계로, 연간 출생 수에 육박하는 수치다. 태어난 만큼 죽어가고, 낳는 기쁨 만큼 지우는 슬픔도 함께 존재해왔다. 이런 패러다임은 한국 산업화 60여년간 계속돼 왔다.
한국에서 낙태는 분명 불법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일 뿐 사실상은 ‘하고 싶은대로’ 해왔다. 이에 ‘낙태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따라붙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로 구성된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낙태 근절을 표방하며 올해 초 낙태시술을 한 동료의사를 고발하면서 낙태 논쟁이 뜨거워졌다.
이들은 ‘낙태는 태아의 생명권을 강제로 빼았는 행위’라며 ‘생명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가치이기 때문에 생명권 보호가 우선돼야 한다’는 논리를 들고나왔다.
여기에 여성계는 ‘낙태금지는 여성 몸의 건강권과 선택권을 침해하고 현실을 전혀 고려치 않는 발상’이라고 맞받아쳤다. 성폭력, 근친상간, 유전적 질환 등으로 원치않는 임신을 했음에도 불구, 출산 강요는 여성의 인권을 말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8일 여성계는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공동성명서를 통해 ‘여성에게 원치않는 임신을 강요해선 안되며 낙태 근절에 앞서 여성들이 낙태를 택하지 않도록 사회 경제적 조건을 개선하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논란이 거세지면서 국내 병원들이 낙태시술을 꺼리자 중국으로 ‘낙태 원정’을 떠나는가 하면 무면허 시술 등 음성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마산시에서는 불법 낙태 근절을 위해 ‘낙파라치제’ 도입을 보건복지부에 건의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정부는 낙태 논란이 뜨겁자 이달 초 불법 임신중절예방 종합대책을 내놨다. 정부 대책은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고, 10~20대 청소년에 대한 피임교육을 강화하고 비혼(非婚) 한부모의 경제적 자립 지원을 위해 임신과 출산, 육아지원 등을 강화하겠다는 게 주요 골자다.
그러나 이는 기존 정책을 짜깁기한 알맹이없는 정책에 불과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례로 임신중인 여학생이 학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검정고시 학원비(연간 154만원)를 지원한다는데 이는 퇴학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고등학교에선 임신한 여학생들이 출산후 다시 학교에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고 학교내에 모유수유실까지 마련돼 있다고 한다. 우리도 10대 임신이 더이상 막을 수 없는 사회현상이라면, 또 낙태가 허용이 안된다면 퇴학이 능사가 아니라 이들이 아이를 낳고도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출산 및 낙태 정책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 속에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이 미덕이던 70~80년대 정부는 낙태수술에 규제를 가하지 않았다. 그러다 저출산이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낙태 단속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정부가 국가 형편에 따라 여성의 몸을 강제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낙태는 무조건 반대해야할 문제도, 반드시 허용해야할 문제도 아니다. 확실한 것은 여성을 둘러싼 환경은 바꾸지 않으면서 낙태만 근절 시키겠다는 건 여성에게만 책임과 고통을 준다는 것이다. 출산을 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여건부터 만들어 주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하다.
/이연섭 편집부국장·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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