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말 홍콩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일본에서 잘 알려진 경제학자를 만났다. 20년 넘게 동경대 경제학부 교수를 지낸 그는, 고위직책을 거쳐 지금은 일본 내 국책기관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서로 잘 아는 사이여서 자연스럽게 동계올림픽에 대해 의견을 나누던 그가 요즘 일본에서는 되는 일이 없다고 한숨을 지었다. 평소 일본에 대한 우월성과,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경제질서의 확대발전을 강조하던 그가 한국이 부럽다고 하면서 한동안 일본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비관적 견해를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오늘의 일본을 엿볼 수 있었다.
OECD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경제 성장률은 -5%대로 주저앉았으나, 우리 경제는 0.2%로 마이너스를 벗어났고 금년에는 4.4%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일본경제를 상징하는 일본항공(JAL) 파산, 토요타 리콜사태 등으로 일본 경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상황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아랍에미레이트(UAE) 원전 수주를 따내었고, 최근에는 터키에 대한 원전 수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브라질 고속철 사업에서 우리 업체가 주도하는 콘소시엄이 현지에서 호평을 받고 있어 고속철 수출도 가시권에 와 있다. 몇 번의 시도에도 아직 성사되지 않고 있지만, 향후 몇 년 내 국산전투기 수출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일본의 경제학자가 더 아쉬워한 것은 국제사회에서의 일본의 위상 추락이었다. 지난해 2월 G7 재무장관 회의에서 일본 재무상이 음주 기자회견으로 추태를 보였고, 일본의 장관이나 수상이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고위 인사들이 국제회의를 주도하는 모습과는 대비된다는 것이다. G20 정상회의를 아시아국가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주최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오는 11월 서울에서 개최될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는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우리 내부의 문제점을 시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경제는 10년 넘게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선진국들은 소득 2만달러대를 5년 내외에 통과함으로써 선진경제의 기틀을 확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진국으로의 발전은 단순히 국민소득 증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우리 상품으로 보면, 산업적 측면에서는 이미 선진국 수준에 다가가 있으나, 우리 정치문화와 국민의식은 아직도 후진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가 바로 서고 국민의식이 선진화될 때 경제성장의 토대가 마련됨은 이미 계량적으로도 증명되어 있다.
한동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세종시 원안수정 문제가 어느 정도 수습국면에 들어가자, 그동안 잠잠해졌던 4대강사업에 대한 논란의 불씨를 다시 살리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이므로 실익을 따지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업을 전개하도록 하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 정쟁을 위해 국론분열적인 논란을 제기해서는 안되며, 국책사업이 생산적으로 추진되도록 논의를 집중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후진적인 집단이 국회와 정치권임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국회의장이 최소한의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의원들의 출석을 통사정해야 하고, 다수결이 기본인 국회에서 소수가 폭력으로 맞서는 것이 자주 목격되고, 자신들의 세비와 지원금 인상에는 아무런 논란 없이 일사철리로 동의하는 것이 우리 국회이다. 미국 의회처럼 세비인하법안을 제출하지는 않더라도, 우리 국회가 최소한의 역할과 생산성을 보여줄 때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정석물류통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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