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잔인한 4월은 안된다

박정임 문화부장 bakha@ekgib.com
기자페이지

밀린 신문을 뒤적이다 사회면 하단에 눈이 멈췄다. ‘실종아들 월급 받아들고 가족들 오열’이라는 제하의 내용은 그날의 참담했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바로 천안함 침몰 사고다.

 

거대한 군함이 반토막이 났다. 선체에 갇혀 바닷속에서 죽어간 생떼 같은 젊음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그런데도 아직 사고의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중에 실종된 승조원들의 4월 급여가 지난 10일 정상지급됐다고 한다. 급여통장을 뒤늦게 확인한 실종 승조원 가족들은 월급날 환한 얼굴로 간식을 잔뜩 사들고 들어오던 모습을 떠올리며 또 다시 오열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하는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를 매년 4월이면 습관처럼 입에 올리곤 했지만 딱히 어떤 의미를 담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올해 4월은 과연 잔인한 달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시인은 그것도 ‘가장’ 잔인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장병들이 변을 당한 것도 안타까운데, 구조 활동을 벌이다가 아까운 목숨이 쓰러졌고, 수색작업을 돕던 민간인 어부들까지 여러 사람이 희생됐다. 소말리아에서는 유조선이 해적에게 납치됐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아이티와 칠레에서는 아직까지도 지진 후폭풍이 거센데 중국에서도 지진으로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폴란드 대통령이 탄 비행기는 추락했다. 유혈 사태가 일어난 나라도 있다. 이달 들어 나열하듯 목숨을 숫자로 표시하는 뉴스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역사적으로도 유난히 4월에 의로운 피를 흘린 이들이 많다. 4·19 혁명도 그렇거니와 노예 해방운동을 이끌었던 미국의 링컨 대통령, 인권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저격사건들은 사월을 잔인한 달로 기억하게 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처형된 것도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실낱같은 기적에 희망을 걸고 조바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가족들. 그들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이다.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구조를 중단하고 선체인양작업을 요청하기까지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하루 아침에 남편과 아들을 잃은 가족들의 비통한 심정은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다.

 

선체는 인양됐다. 사고 원인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하지만 먼저 서둘러야 할 게 있다. 천안함 희생자와 가족을 최대한 배려하고 보살필 수 있는 대책마련이다.

 

고인이 된 김태석 상사의 안타까운 사연은 같은 여자이고 아내라는 동질감에 여전히 맘이 편치 않다. “상사로 진급하면 월급이 오를거라며 즐거워 하던 남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부인 이씨와 남겨 진 8세·7세·6세 연년생 딸들. “애들은 계속 크고 있고 교육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 정말 막막하다”고 한 걱정과 한숨이 남의 얘기 같지 않다.

 

희생자 가족들은 슬픔도 슬픔이지만 당장 살 집을 얻어야 하고, 부모를 모셔야 하고, 자식을 공부시켜야 하는 현실적 문제에 부닥쳤다. 공무수행중 순직했다면 간부의 경우 1억4천100만원~2억4천700만원, 일반병은 3천650만원을 일시금으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천안함이 외부 공격 등으로 전사한 것으로 판명되면 일시금 액수는 물론이고 훈장 추서여부까지 예우가 확연히 달라진다. 간부는 3억400만원~3억5천800만원, 일반병은 2억원을 받게 돼 최고 5배 넘게 차이가 난다. 연금의 경우 간부는 월 141만원~255만원, 일반병은 94만8천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어린 자녀들을 추슬러 살림을 꾸려나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합당한 예우를 해 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적어도 남은 가족이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칠 걱정은 하지 않게 해줘야 한다. 희생자 가족들에게 더 이상 4월이 잔인한 달이 돼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박정임 문화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