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약속이나 시간관념이 떨어지는 한국인들의 습관을 빗댄 표현이다. 약속시간에 늦을 경우 변명을 위해 많이 쓰이는 말 중의 하나다. 6·25 당시 주한 미군이 한국인과 약속을 했으나 약속시간보다 늦게 나온 한국인을 좋지 않게 생각했고 이것이 한국인의 시간관이라 여겨 코리안타임이라는 말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시간약속에 있어 정확성을 따지는 서양에는 약속과 관련한 수많은 말이 있다. 루이 18세가 ‘시간엄수는 군주의 예절이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
‘선진국일수록 약속사회’라고 불릴 만큼 약속을 중요하게 여긴다. ‘약속시간보다 5분이 지나면 온당한 변명이 필요하고 15분이 지나면 정중한 사과를 해야 한다. 30분이 지난 후에 약속장소에 나타난다면 신용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돼 다음에 초대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생길 정도다.
1980년대 한국경제가 눈부실 만큼 급성장하면서 교통체증으로 인해 약속시간에 늦었다는 등의 변명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모두가 인정해주는 사회분위기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흐른 현재도 코리안타임은 사라지지 않았다.
국경 없는 경쟁시대를 맞아 시간개념이 없는 한국인은 살아남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인식이 바뀌었다. 촌각을 다투는 요즘 코리안타임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가는 본전도 뽑지 못한다. 낙오자가 되기 쉽다. 특히 1990년 이후 출생을 한 신세대들에게 코리안타임이라는 말 자체가 낯선 듯하다.
30여분 늦어도 크게 개의치 않던 그 시절이 그리울 수도 있지만 1초가 아쉬운 신세대나 현재를 사는 40~50대도 지금은 약속시간을 칼 같이 지킨다.
얼마 전 모 대학 교수와 오전 11시30분에 만나기로 하고 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다. 주차장에 빼곡히 들어선 대학생과 학교 직원 등의 차량으로 인해 주차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약속시간에 늦지 않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교수는 제시간에 온 나를 반갑게 맞아주면서 조금 전 외국서 온 유학생들의 시간개념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국비 유학생으로 온 외국학생 몇명과 30분 전에 만나기로 돼 있었지만 제 시간에 온 학생은 한 명도 없었고 일부 학생은 아예 오지도 않았다는 것. 미국인과 만나면서 뒤늦게 도착한 60년 전의 우리 모습이 오버랩됐다.
6·2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수많은 후보자들이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공천 등의 험난한 일정을 거쳐 후보등록을 마쳤다. 본격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고소·고발이 잇따르고 흠집내기, 불법 선거운동이 난무하고 있다. 선거 때만 되면 입후보자나 정당이 유권자에게 공적인 약속을 한다. 바로 공약이다. 경기도민이 뽑는 경기도지사와 경기도교육감, 수원시민이 뽑는 수원시장, 지역대표를 뽑는 도의원, 시의원 등 유권자 수와 관계없이, 아무리 작은 지역의 선거라 하더라도 정치인들의 공약은 발표된다. 유권자도 후보자를 직접 접한 뒤 선출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후보자나 유권자 모두 이러한 상황을 접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은 선거공보물을 통해 후보자의 공약을 검토, 투표의 중요한 선택기준으로 삼는다.
우리는 후보자들의 공약(公約)이 선거를 위한 공약(空約)으로 되어버린 경우를 수없이 겪어왔다. 이번 6·2지방선거 당선자들은 자신들이 유권자와 약속한 공약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약속, 이미 시행되고 있는 일에 대한 약속, 코리안타임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선거에 나선 정치인들의 공약(空約)도 사라져야 한다. 선거 때만 외쳐대는, 선거 때만 손을 내미는, 선거 때만 90도 인사를 하는 그런 정치인의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기를 바란다.
/정근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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