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와 청자 연적

고려시대의 시호(詩豪)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문필로 양명하고 관리로 현달하여 명성과 문장이 후세에 잘 전해져 있다. 그는 글에 대해, ‘… 맑고 새로우며 웅건하고 아름다워야 하며, 그러면서도 평범, 담박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또한 미술품에 대한 감식안도 뛰어나서, ‘마치 늙은 장사꾼이 물건을 보듯’ 꼼꼼히 뜯어보고 살펴보는, 정확한 이해와 감식안의 소유자였다.

 

그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을 보면 청자와 관련된 시가 몇 편 있다. 청자를 직접 보고 느낀 바를 소박하고 진실한 어법으로 표현한 내용을 살펴보면 고려사회에서 청자가 갖는 의미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청자술잔’을 노래한 시에는, “나무를 베어 남산이 민둥이가 되고, 불을 때어 연기가 하늘을 가리었지”라 하여, 앞 산 나무를 모두 베어 연기가 하늘을 가릴 만큼 불을 때서 청자를 굽는 정경을 마치 눈 앞에서 보듯 그려내고 있다. 또한 푸른 옥(玉)빛 색을 위해 몇 번이나 연기 속에 파묻혀야 하는 고난도 기술에 대한 이해가 있었던 점을 보면, 단순 애호가 수준을 넘어 통달의 경지에 이른 전문인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어렵게 만든 푸른 청자술잔도 그의 까다로운 눈에 차는 것은 열 가운데 하나 밖에 되지 않아서, 천상의 기술(天工術)이 아니면 이를 수 없다는 말도 덧붙여 놓았다.

 

조그만 청자 연적(硯滴)을 옆에 두고, “네가 있어 준 뒤로 내 벼루에 물이 마르지 않았지, 네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 것인가”라고 하면서, 공손하게 서있는 동자(童子)를 대하듯 다정한 말을 건네기도 했다. 또, "네 은혜 무엇으로 갚겠는가. 삼가 간직하여 깨뜨리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놓곤 했다. 이규보가 곳곳에 표현해 놓은 청자에 대한 감상과 이해, 이것이 바로 고려시대 지식인의 눈에 비친 청자의 참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 건 경기도자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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