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새끼 지키지 못한 죄 많은 어미입니다.” 천안함 침몰로 아들 민평기 상사를 잃은 윤청자씨(67)의 한은 당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열달 동안 애지중지하며 뱃속에서 키워 늠름한 해군으로 장성시킨 어머니에 박힌 대못의 아픔은 이승을 떠나 저승까지 이어질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자식의 주검을 접한 윤씨는 충남 부여군 자그마한 시골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촌부(村婦)에서 이제는 복장 터지고 피를 토할 정도의 고통을 겪는 자식 잃은 어미로 살아가고 있다.
이를 대변하듯 윤씨는 천안함 46용사 영결식에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왜 북한에 퍼주느냐”며 울부짖는가 하면 천안함 사태 조사결과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시민단체를 찾아가 “가슴이 터진다 이젠 그만”이라며 무릎 꿇고 호소를 했다. 특히 최근에는 자신이 받은 국민성금 1억원을 방위성금으로 기탁해 온 국민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남과 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빚어진 비극이 평온하기만 했던 한 촌부의 인생을 180도 바꿔 버린 것이다.
이처럼 6·25전쟁이 일어난 지 60년이나 됐는데도 남과 북의 현실은 변한 게 없다. 오히려 천안함 사태로 불거진 북풍(北風)이 전쟁의 공포로까지 이어지면서 또다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전국민이 윤씨 같은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불안감이 높아가고 있다.
3년이 넘게 진행된 6·25전쟁에선 무려 500만명의 인명피해와 1천만 이산가족, 10만명의 고아가 발생하는 등 남북한 인구 3천만명의 절반이 넘는 1천800만명이 피해를 당했다.
또 전체 가옥의 절반이 훨씬 넘는 300만호에 가까운 집과 5만여동의 건물이 파손됐고 철도·교량 630㎞가 파괴됐다. 게다가 전화(戰火)가 수차례 휩쓴 서울·경기를 비롯한 수도권 일대는 잿더미 그 자체였다. 1950년이라는 다소 미개한 생활상에도 이 정도 피해인데 현실에서의 전쟁여파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이러한 엄청난 피해를 몰고 온 6·25 당시의 참상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그동안 우리는 불필요한 정치적 갈등으로 6·25 전쟁을 두고도 보수와 진보가 나눠져 논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전쟁은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 고통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달 들어 정부를 비롯 지방자치단체마다 6·25전쟁 6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해외참전용사 초청기념식, 사진전, 음악회 등이 진행되고 언론은 앞다퉈 기획물을 연재하고 있다. 그리고 잊혀졌던 가슴 저린 이야기들 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대통령도 직접 나서 부산의 유엔묘지를 방문해 한국전에 피흘린 용사들의 넋을 기리고 감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은혜를 갚아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선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어쩌면 지금의 눈부신 성장만큼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보은으로 되갚아야 할 책임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60주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전쟁을 일으킨 북한에 대해 적개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도와준 국가에 대한 보은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평화라는 절대적인 가치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6·25 관련 행사는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것을 넘어 보편적 가치인 평화를 가장 앞세워야 한다.
수습기자 시절 한 선배가 전쟁이 일어나면 ‘종군기자로 갈 것이냐’는 질문을 할 때 기자는 ‘무조건 간다’고 했다. ‘왜 가느냐’고 재차 물을 때 ‘기자니까 간다’고 했다. 앞뒤 없이 말한 기자에게 그 선배는 “전쟁의 참상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 죽음을 각오한 종군기자의 가치는 평화에 있다”고 뜻깊은 말을 전해준 적이 있다.
6·25 전쟁 60주년 아침, 현역에서 퇴임한 그 선배의 말처럼 전쟁의 참상 속에 평화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고 싶다. /이용성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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