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군 전곡리의 구석기시대 유적지와 하남시 미사동의 신석기시대 유적지는 선사시대부터 경기 지역에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았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경기도의 정치·전략적 중요성은 기원전 18년 백제 시조 온조가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변함없이 지속되어 왔다.
5세기 중엽부터 경기도의 중심인 한강유역의 지배권을 놓고 패권을 다툰 삼국의 싸움은 최후 승자인 신라의 삼국통일로 막을 내렸다.
천자의 도읍지와 거주지인 왕성(王城)을 중심으로 사방 5백리 이내의 땅을 의미하는 경기(京畿)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행정명칭으로 사용된 것은 왕도인 개경 외곽지역의 13개 현(縣)을 묶어 고려 현종 9년(1018)에 ‘경기(京畿)’라 부르기 시작한데서 출발한다.
현재와 같은 경기도의 모습은 조선왕조의 개국으로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전국을 8도로 구분하고 영역을 오늘날과 비슷하게 재조정하면서 탄생했다. 1895년 8도제가 폐지되면서 없어졌던 경기도는 이듬해 13도제의 실시로 되살아난 후 1910년 한일합방으로 오늘날의 서울특별시인 경성부와 통합되면서 도청을 수원에서 서울로 이전했다.
1946년 서울특별시가 경기도로부터 분리되면서 2부 21군으로 새 출발한 경기도는 1967년 도청 청사를 서울에서 현재의 수원시 매산동으로 이전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27개 시(市) 4군(郡)의 행정구역을 아우르는 경기도의 면적은 10만184㎢로 국토 면적의 10%이고, 서울시 면적의 16.7배이다. 2009년 기준으로 인구는 1천170만 명으로 서울시보다 124만 명이나 많고, 세출예산 규모 역시 34조4천634억원으로 24조4천778억원에 그친 서울시보다 무려 10조나 많다.
경기도의 지역총생산규모 1천823억 달러는 세계 35위에 해당하고 무역규모 1천230억 달러는 세계 39위로, 홍콩, 베네수엘라, 이란, 포르투갈과 비슷한 수준이다. 21세기 초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중심에서 세계 속의 경기도로 힘찬 발걸음을 딛고 있다. /문원식 성결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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