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들려온 구제역 소식은 상반기 내내 많은 축산인들을 힘겹게 했다. 포천과 연천지역에서 터진 1차 발생에 대한 종식 선언 후 16일 만에 재발한 구제역은 6월 18일 마지막 발생지인 청양지역의 가축이동제한이 해제되면서 상시 방역체제로 전환되었다.
2010년 구제역 발생으로 살처분한 가축은 총 5만5천830두이며 정부 피해액은 약 2천374억원이다. 살처분 두수나 피해농가의 수는 지난 2000년과 2002년에 비해 적었지만 국가기관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사상 최고 ‘경계’ 수준의 국가위기경보가 발령되는 등 파급효과는 여느 때 못지않았다.
가축이동제한이 해제됐다고 해도 축산농가의 지속적인 방역활동은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웃나라 중국에서 상시 발생하고 일본에서는 300건 가까이 발생하는 등 언제 어디서 구제역이 다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올해 국내에서는 전국적으로 17건의 구제역이 발생했다. 이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에 의하면 외국인 근로자와 해외여행 농장주에 의해 구제역 병원체가 국내에 유입되었으며 이웃농가의 전파는 대부분 사람이나 차량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축산농가라면 당연히 방역에 신경을 쓸 것이다. 하지만 질병이란 것이 ‘아차’ 하는 사이에 퍼질 수 있다.
어느 동네에서 잔치에 쓰기 위해서 집집마다 한 통씩의 포도주를 모으기로 했다. 하지만 잔칫날 포도주를 대접하려고 따라 보니 맹물이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한 번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이 그 날의 잔치를 엉망으로 만들 듯이 나 하나쯤이라는 생각으로 축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본인뿐만 아니라 죄 없는 주변 농장들과 크게는 축산업, 그리고 더 크게는 국가 신뢰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축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축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축산농가의 자질과 의식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축산농가의 소양을 높이고 농장과 관련시설 출입차량 및 관계자에 대한 방역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의 ‘가축질병 방역체계 개선안’을 추진한다. 이 안에 의하면 일정기간 방역·안전·환경·경영 등에 관한 교육을 이수한 자만이 축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축산업 면허제가 도입되며 축산농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할 경우 신고를 의무화, 위반 시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고 가축거래 상인에 대한 신고제도 도입된다. 또한 축산농장에 출입하는 모든 차량과 사람들에 대한 소독과 기록 관리도 의무화하고 악성 가축 전염병 발생 국가를 여행한 축산 농가도 입국시 신고를 의무화했다. 이 같은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그로 인해 구제역 등을 발생·확산시킨 농장주 등에 대한 보상금 삭감과 가축시설 폐쇄 등의 근거를 마련키로 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축산농가 스스로의 의식 변화가 중요하다. 법적인 제재가 가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가축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갖춰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아기가 태어났을 때 집에다 특별한 장식을 함으로써 그 아기의 탄생을 알리는 풍습을 갖고 있었다. ‘금줄’을 내거는 풍습이 그것이다. 금줄의 사전적 풀이는 부정한 것의 침범이나 접근을 막기 위해 문이나 길 어귀에 건너질러 매거나 신성한 대상물에 매다는 새끼줄이다.
사실상 금줄을 내건다고 부정한 것의 침범이나 접근이 막아질까 싶지만 일종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다. 금줄을 내거는 부모의 마음처럼 축산인이라면 축사 주변 방역에 신경을 쓰자. 소독이 생활화된다면 축산에 대한 이미지도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 것이다.
가축도 사람처럼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다. 또한 축산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가축을 건강하게 키워야만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라승용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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