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가 지방채 발행 제한에 나섰다. 성남시가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을 선언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지 열흘 만이다. 민선 4기 때 3천222억원 규모의 호화 청사로 논란을 빚은 성남시는 지난 12일 LH에 지급해야 할 돈 5천200억원이 없으니 차차 갚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인공섬 건설 등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국영개발업체 두바이 월드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등 외국의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성남시가 처음이다.
더욱이 시 재정자립도가 전국 시 평균(40%)보다 37% 포인트나 높은 편이어서 충격이 더욱 크고 파장 또한 만만치 않다.
일각에서는 ‘성남시의 재정상태가 파산될 정도였나. 일부러 빚을 갚지 않으려 하는 것 아니냐. 전임 시장과의 선긋기다’며 곱잖은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재명 시장은 국토해양부와 대립각을 세운 뒤 위례신도시 카드를 꺼냈다.
위례신도시 시행 참여 요구를 정부가 수용하지 않을 경우 행정업무 협조를 거부하겠다며 배수진을 친 것이다.
그러나 실시계획이 승인된 상황에서 위례신도시 사업 참여 요구는 억지다. 부지를 제공한 시가 제외된 것은 안타깝지만 위례신도시 지분은 일찌감치 LH와 서울시가 각각 75%, 25%로 확정돼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이다.
이런 가운데 시는 이재명 시장의 공약을 이행하려고 개발계획이 승인된 1공단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한다고 밝혔다. 이미 6년여에 걸쳐 확정된 도시기본계획과 개발계획을 모두 원점으로 되돌리고 수천억원이 예상되는 공원조성 사업비를 어떻게 감당하겠다는 것인지 시의 이중적 행태에 할 말을 잊는다.
이 시장은 진위가 무엇이든 공무원들의 임금삭감이나 동결, 재정의 효율적 분배 등 자신의 뼈를 깎는 자구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 시장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하고 시민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한순간에 짓밟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성남시 사태가 아니더라도 지방 재정문제는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였다. 선출직 시장·군수들은 선거를 의식해 재정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대규모 투자사업을 추진, 시 재정을 악화시켰고 적자 재정을 메우기 위한 지방채 발행으로 이어졌다. 카드 돌려막기 식으로 재정파탄을 막은 것이지만 부담은 후임 단체장과 주민에게 고스란히 떠안겨졌다.
이 같은 위기의식은 지난 20일 열린 민선 5기 경기도내 첫 시장군수 정책회의에서 소속 정당을 떠나 공감대를 형성했다. 대부분의 단체장이 정부의 예산조기집행, 전임 시장의 무리한 사업추진 등으로 재정이 바닥이 났다고 하소연하며 특단의 대책을 논의했으나 뾰족한 묘안을 찾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정부는 지자체의 호화청사 건립 및 선심성 행사·축제 금지 등 지방정부의 재정건전화를 위한 종합처방을 내놓았다. 분야별 내부 감사 시스템 구축은 물론, 재정위기가 심한 지자체의 인건비를 줄이고 지방채 발행, 일정규모 신규 투자사업 추진을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의 이 같은 규제가 아니더라도 자치단체장은 주민 환심을 사기 위한 선심성 행사, 공약 이행을 이유로 한 무리한 신규 사업 추진 등 포퓰리즘으로 인한 예산낭비를 자제해야 한다.
백범 김구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 하나도 어지러이 마라/ 오늘 내가 걸어 가는 발자취는/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라는 서산대사의 선시(禪詩)를 민선 5기 자치단체장이 가슴에 새겨야 할 때다. 김창학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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