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땅이 지붕넘에 넘석하는 거리다
자구나무 같은 것도 있다
기장감주에 기장차떡이 흔한데다
이 거리에 산골사람이 노루새끼를 다리고 왔다
산골사람은 막베등거리 막베잠방등에를 입고
노루새끼를 닮었다
노루새끼 등을 쓸며
터앞에 당콩순을 다먹었다 하고
서른 닷냥 값을 부른다
노루새끼는 다문다문 흰점이 배기고 배안의 털을 너슬너슬 벗고 산골사람을 닮었다
신골사람의 손을 핥으며
약자에 쓴다는 흥정소리를 듣는 듯이
새까만 눈에 하이얀 것이 가랑가랑한다
함경남도 장진 땅 아래 어느 작은 장터거리에 노루새끼를 팔러 나온 저 산골사람의 계산법을 좀 보자. 집 앞 텃밭에 강낭콩을 수확하면 예년 평균 ‘서른닷 냥’ 정도가 나왔는데, 올해는 어린 노루새끼가 몰래 와서 그 콩순을 다 뜯어 먹어 농사를 망쳤으니, 이 괘씸한 노루새끼 값을 그 정도는 받아야한다는 것이다. 말이 되는지 모르지만, 콩값이 곧 노루값이 되는 저 산골 셈법은 설득력이 있다. 요즘 같이 실물은 없고 숫자놀이에 불과한 증권이니 주식이나 하는 경제논리에 비하면 얼마나 정확하게 똑 떨어지는 계산법인가, 거기다가 노루새끼를 무슨 병에 약재로 쓰는지 모르지만 쉽게 성사되지 않을 것 같은 저 지루한 흥정 끝에 백석은 덤으로 노루새끼 눈에 그렁그렁 비치는 눈물까지를 약으로 내놓았다.
<이덕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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