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사계절로 보아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눈다. 봄은 싹이 트고 꽃이 피는 계절이요, 여름은 자라서 열매를 맺는 계절이다. 가을은 그 열매를 거두고 겨울은 만물이 잠을 자는 계절로 분류를 한다. 그러나 동양의학에서는 일년을 오계절로 이야기 한다.
여름을 열매 맺는 계절로 보고 가을을 거두는 계절로 볼 때 여름과 가을 사이가 ‘장하’라고 부르는 계절이다. 이 기간에는 햇살이 뜨겁고 하늘도 높다. 여름에 무더위와는 달리 높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은 피부 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 든다. 이때에 어머니는 장독을 열어놓고 햇살을 받게 해주고 앞 텃밭에서는 빨간 고추가 붉게 익어간다. 과일나무에서는 과일들이 익어가고 논과 밭에서는 곡식들이 황금빛을 띠고 익어간다. 이 장하의 계절, 여름과 가을사이에 또 한 계절 그 속에서 여름에 맺힌 열매가 익어간다. 다시 말해 여름에 잘 자란 열매가 가을에 추수하기까지 성숙해가는 계절이다. 곡식이든 과일이든 장하의 계절이 있어야 한다. 장하의 계절을 거친 열매는 아름답다. 좋은 알곡이 되고 열매가 되어 창고에 추수하는 이의 기쁨이 되어 창고에 쌓여진다.
사람의 말은 소리가 아닌 언어
사람에게도 장하의 계절이 필요하다. 장하의 계절을 지낸 인생은 아름답다. 사람의 말은 소리가 아니라 언어이다. 사람의 말에는 뜻이 담겨 있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말의 차이이다. 짐승은 소리를 내지만 사람은 말을 한다. 사람에게는 사유하는 능력이 있어 그냥 나오는 대로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뜻이 담긴 말, 그래서 언어라 한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농가 부업으로 누에를 쳤다. 누에는 우리 인생과 같아서 인생의 사계절과 비슷하다. 유아기에 속하는 애벌레를 거쳐 청소년기와 장년기를 거쳐 노년기에 이르러 모든 먹은 것을 배설하고 입에서 실을 뽑아 누에고치 집을 짓고 그 집에 들어가 번데기가 된다. 입으로 깨끗한 실을 뽑아내는 누에는 깨끗한 집을 짓는다. 그러나 잘 숙성되지 못한 누에는 좋은 실을 뽑아내지 못할뿐더러 집도 제대로 완성시키지 못한다.
성장ㆍ성숙이 묻어나는 인생 돼야
숙성되어 누에고치를 짓기 전에 누에를 ‘잘 늙었다’는 표현을 한다. 잘 자라서 속에 있는 배설물을 다 배설하고 난 후에 말갛게 된 누에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그때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누에 듣는데 절대 늙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하셨다. 대신에 ‘잘 익었다’는 말을 하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사람이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늙은이’, ‘늙었다’는 말이라는 것이다. 곡식도 과일도 잘 익었다는 표현을 쓰는데 왜 사람에게는 늙었다고 하느냐고 하시면서 사람도 누에한테도 늙었다는 말보다는 잘 익었다라고 말하게 하셨다. 이웃집 할머니가 마실 오셔서 누에를 보시고 “누에가 많이 늙었네”하시면 정색을 하시면서 “잘 익었다”라는 말로 하시게 하셨다. 어머니는 늙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잘 익고 싶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장하의 계절을 좋아하셨다. 가끔 어머니를 따라 들녘에 나아가 일손을 돕다가 날씨가 너무 덥다고 불평이라도 할라치면 어머니는 “암 더워야지, 햇볕이 따가워야지, 그래야 곡식들이 잘 영글지”하시곤 했다. 그 말씀을 듣고 황금빛 출렁이는 들녘을 바라보면 갑자기 햇살이 고맙게 느껴지곤 했던 추억이 있다.
이제 내 나이 어머니가 늙기 싫다고 말씀하시던 그 나이가 됐다. 그리고 어머니가 늙기를 거부하시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어느새 장하의 계절도 모른 채 그냥 훌쩍 인생을 살아온 것 같아 두려운 생각도 든다. 그렇다, 늙은이가 되고 싶지 않다. 잘 익은 인생이 되고 싶다. 성장과 성숙이 함께 삶에 묻어나는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래서 오늘도 아침을 열면서 이 소원을 마음에 담는다. “장하의 계절을 지낸 인생 되게 하소서!” 반종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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