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놓치다 - 윤제림(1959~)

<중략>…내 한때 곳집 앞 도라지꽃으로

 

피었다 진 적이 있었는데,

 

그대는 번번이 먼 길을 빙 돌아다녀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내 사랑!

 

쇠북 소리 울리는 보은군 내속리면

 

어느 마을이었습니다

 

 

또 한 생애엔,

 

낙타를 타고 장사를 나갔었는데, 세상에!

 

그대가 옆방에 든 줄도

 

모르고 잤습니다

 

명사산 달빛 곱던,

 

돈황여관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전생과 내생을 거듭 살아도 만날 수 없는 그대, 한 생은 도라지꽃으로 피었다가 쓸쓸히 지고 또 한 생은 장사꾼이 되어 국경을 넘어 떠돌았으나, 늘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사랑이여! 그러니 끝내 만날 수 없는 사랑을 찾아 사막을 헤매는 저 떠돌이 낙타들은 날마다 헛걸음이네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그대에게 보여주겠다고 따뜻한 봄날 외진 들판 습 찬 곳을 골라 분단장 몸단장하고 수줍게 피어나는 저 지천인 이름 모를 들꽃들의 한 생이 무색하네요. 그리하여 지금 여기 사랑은 없지만, 오늘도 여전히 사랑을 찾아 낙타는 사막을 헤매고 또 어느 허구렁에선가 수없이 꽃이 피고 지는 사랑 놀음이 바로 우리네 삶이네요.  <이덕규 시인>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