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인가, 관계인가

한번은 가까운 관내 파출소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 남성과 결혼해 살고 있던 베트남 출신 여성과 그녀의 두 아이들을 보호해 달라는 것이었다. 사정을 들어본즉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아이 아빠는 매일 밤 만취 상태로 늦게 집에 들어와 아내를 구타할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에게까지 괴로움을 준다는 것이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아이엄마는 아이들만 데리고 경찰을 따라 집을 나왔던 것이다.

 

아이 엄마는 이대로 살 수 없으니 꼭 이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했다. 양육비도 위자료도 필요 없고, 아이들도 자신이 열심히 일해서 키우겠으니 무조건 이혼만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여러모로 설득해 보았지만 막무가내여서 결국 연관된 법률회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게했다. 이혼소송 비용을 걱정하는 그녀에게 무료로 모든 일을 주선해 준다고 했더니 매우 의아해했다.

 

그 뒤 다시 설득해 집에 돌려보냈으나 하루 만에 작은 아이만 데리고 다시 센터로 돌아왔다. 집을 나갔던 아내가 돌아오자 남편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이전보다 더한 폭력을 아내에게 행사했던 것이다. 함께 의논한 끝에 남편이 모르는 다른 쉼터로 안내를 하게 됐다.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야 할 가엾은 두 모자를 위해 여행용 가방과 몇 가지 필요한 물품들을 사러 다녔다. 떠날 채비를 마치고 함께 이동하는 차 안에서 그녀가 물었다. “원장님은 아무 관계도 없는 저에게 어떻게 이렇게 잘 해 줄 수 있어요?”

 

그날 이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통용되는 두 종류의 질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봤다. 그 첫 번째가 ‘관계질서’요, 그 다음이 ‘거래질서’다. 남편과 아내, 스승과 제자, 친구와 친구의 관계 등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반면에 손님과 장사꾼처럼 별 관계는 없어도 서로 간의 이해에 얽혀 살기도 한다.

 

‘거래질서’는 손익계산에 따라 주고받는 과정 속에 형성되는 것이지만, ‘관계질서’는 받기보다는 주는 과정 속에서 돈독해진다는 것이다. ‘거래질서’의 메마름보다는 자식이기 때문에 조건 없이 희생하는 부모처럼, 주고받는 거래가 아닌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뿌듯한 ‘관계질서’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비결이다. 한사람 한사람 각자가 지닌 최고의 절대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관계질서’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된 살맛나는 세상을 위해 오늘도 달려간다.  김영수 안산다문화가족 행복나눔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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