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탈’ 쓴 ‘불행한 부부’ 가면 벗고 마주보며 정결한 참회를
독일에서 출간돼 50주 연속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25개국에 소개된 화제작이 있다.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가 지은 책이다.
유명한 독일 의사인 페너가 48년간 대화 없이 살면서 서로 미워하다가 욕설을 퍼부은 아내를 도끼로 살해하는 이야기다.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 행복하고 그럴듯하게 보였지만 부부는 서로 비난하고 미워하면서 최악의 48년이란 긴 악몽의 시간을 보냈다.
매체를 통해 보면 이 시대는 페너부부 말고도 행복의 탈을 쓰고 긴 시간 이혼하지 않으면서 불행하게 살고 있는 부부가 적지 않다. 남들 앞에선 행복하게 잘 사는 척하지만 집안에서 가면만 벗으면 원수처럼 등을 돌리고 말 없이 사는 부부가 허다하다고 한다.
서로 마주치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부는 서로의 일정을 어긋나게 조정하고 심지어 한집에 살면서도 밥도 따로 해먹는다. 대화는커녕 눈길 한 번 안 주고 소통은 냉장고에 붙여진 메모지에 서로 필요한 것만 얼음처럼 차가운 문장으로 적는 것이 고작이다.
어떤 노부부의 기막힌 7년간의 가면부부 이야기도 있다. 노부부는 탈을 벗고 끝내 이혼소송에 들어갔지만, 정말 어처구니없는 가면부부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이 시대는 많은 가면부부를 양산하고 있다. 이 가면부부들이 더는 못 참고 이혼하게 되는데, 대화가 끊겨 있기 때문에 이혼하고 싶다는 이혼 사유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많은 부부가 미움이나 비난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다.
퍼소나(Persona)란 용어는 탈, 또는 가면으로 번역되는 문학용어인 동시에 인간이 세상에 내보이는 외적인격의 상징물이다. 인간은 자아와 이 세계와의 갈등 관계로 늘 혼란을 겪는다. 자아가 부정적일 때 인간은 자기 봉쇄적 방법으로 탈을 쓰게 된다.
탈을 쓴 탈 속의 자아는 거리낄 것 없이 자유롭고 멋있고 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탈 속에 숨겨진 실재적 자아 때문에 인간은 분리에 대한 인식이 날카로워지고 자아는 더욱 고립적이 된다.
이 시대는 이러한 이중적 자아가 내적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기에 아주 좋은 시대이다.
인간들이 쓰고 있는 탈은 다양하다. 가장 어두운 표정의 실재 위에 가장 밝은 탈을 쓰고 있을 때라든지, 가장 불행한 부부가 쓰고 있는 행복의 가면, 악마적 상상을 하고 있는 얼굴 위에 성자의 정결한 탈을 쓰고 있을 때도 있다. 이때 탈 속의 실재 자아는 자기가 자기를 타인으로 여기기도 하고 순간적이지만 자기가 아닌 쓰고 있는 탈의 흉내를 훌륭히 해내기도 한다.
가면을 쓰지 않을 때 할 수 있었던 증오, 비난, 모욕, 경멸, 폭언들이 가면 하나 쓰고 나면 모든 것이 해결이나 된 듯 잠시 정지되고, 그치게 된다.
윤동주의 ‘참회록’이라는 시를 잠깐 소개한다. 시인 윤동주도 자기의 욕된 얼굴과 외형으로 드러난 자신과의 괴리를 참지 못해 자기가 자기 얼굴을 문지르는 것을 시에서 읽을 수 있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 이다지도 욕될까?/ … 중략 … /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 보자. /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름의 뒷모양이 /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참회록의 한 부분이다.
시인은 자신을 욕된 역사의 유물이라고, 역사에 짓눌려 있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 윤동주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끊임없이 닦으면서 녹, 즉 가식의 근원인 퍼소나를 지우면 자기를 찾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여기서 거울은 퍼소나를 쓰고 있는 나를 비춘다. 거울에 비춰진 얼굴은 실재의 자기가 아니고 역사의 굴욕적인 유물인 퍼소나이다. 윤동주는 탈을 쓰지 않은 참 자기를 찾기 위해 철저하게 참회한다.
이 시대의 아침, 어느 가면부부 한 쌍이 퍼소나를 벗어던지며 이처럼 서로에게 정결한 참회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유쾌할까?
최 문 자
협성대 총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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