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영은미술관
최근 국공립 미술관에서는 창작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10년 전 사립미술관으로 전시관에 창작스튜디오까지 갖춘 곳은 영은미술관이 처음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창작스튜디오와 미술관이 한 공간에 있는 곳은 영은미술관을 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지난 2000년 11월 (재)대유문화재단은 전시와 창작, 연구, 교육을 동시에 지향하는 종합미술문화단지로 지역의 작가들을 발굴, 육성하기 위해 영은미술관을 설립했다. 개관 당시부터 전시관과 창작스튜디오를 함께 운영, 작가들은 이곳에서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까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김아타, 박미나, 육근병, 윤영석, 이한수, 함연주, 황혜선 등 70여명에 달하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현재도 입체 스튜디오 5동, 평면 스튜디오 7동에서 7기 10명의 입주작가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작가들은 입주기간이 끝날 즈음 2년간의 입주기간을 마감하는 ‘영은 레지던시 전’을 개최하고, 매월 한 작가씩(장기 입주작가) 릴레이 개인전을 진행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실력을 평가 받는다. 봄과 가을, 두 번에 걸쳐 진행되는 워크숍은 스튜디오 작가들의 창작의 현재와 비평의 현장을 함께 만날 수 있다.
미술관은 작가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만큼 관람객들에게도 다양한 열린 공간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 특강과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미술관이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은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곳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비해 영은미술관은 개관과 동시에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으로 여타 미술관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특히 창작스튜디오가 함께 있다는 점을 적극 활용, 입주 작가들이 아카데미 프로그램이나 특강에 직접 참여토록 했다.
프로그램들은 단순히 보기만 하는 예술이 아니라 작가의 창작스튜디오를 둘러보고 함께 작품을 직접 만들어 봄으로써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이해 할 수 있도록 진행된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올해 처음 실시한 ‘아트캠프’다. 학생을 대상으로 미술관에서 2박3일 동안 진행한 캠프는 한명의 작가와 10여명의 아이들이 한조를 이뤄 한지로 전통 등 만들기, 미술관 외관 라인 만들기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직접 미술관에 설치·전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미술관은 지역민과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상시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은 미술관 야외 조각공원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생일파티를 열 수 있다.
전시관·창작스튜디오 함께 운영 현재 10명 작가 활동
입주작가, 아카데미·특강 참여 주민들 문화선생님 자처
야외 조각공원은 결혼식·생일파티장 개방… ‘문턱’ 낮춰
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이 찍은 미술관 전시풍경이나 교육프로그램 참가사진을 홈페이지인 ‘싸이타운’에 올리면 선정해 소정의 선물을 증정하는 ‘사진콘테스트’ 프로그램도 인기다. 또 콘테스트에서 선정된 사진들을 모아 정기적으로 ‘사진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밖에도 교육청과 연계해 강사가 각 학교를 직접 방문해 강의하는 ‘지역명예교사’ 프로그램, 도예, 천연염색, 천연비누만들기 등도 진행하고 있다.
모두가 작가들과 관람객들이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소통하고 어려운 미술관이 아닌 재밌고 즐거운 미술관으로 문턱을 낮추기 위한 일환이다.
박선주 영은미술관 관장은 “미술관의 노력 덕분인지 지역 주민들이 미술관을 휴식공간으로 여기며 자유롭게 오고가게 됐다”며 “미술관이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만큼 지역민들과 가까워 져야 그 존재가치가 더 빛난다”고 이야기 한다.
미술관은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객을 맞는다. 입장료는 일반 4천원, 학생(초·중·고) 3천원, 어린이 2천원. 문의 (031)761-0137
채선혜기자 cshyj@ekgib.com
<인터뷰> 박선주 영은미술관 관장 인터뷰>
“작가-관람객 소통의 장 만들 것”
길에서 작가들을 만나기는 어렵다. 하지만 광주 영은미술관에 가면 곳곳에서 작가를 만날 수 있다. 전시관과 창작스튜디오가 같은 공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영은미술관은 어느 곳보다도 작가와 관람객의 소통이 활발한 곳으로 통한다.
지난 2002년 2대 관장에 취임해 8년여 동안 영은미술관과 창작스튜디오를 함께 운영해 오고 있는 박선주 관장은 “영은미술관은 지역의 작가들을 발굴, 육성하기 위해 설립됐다”고 설명하면서 “지역은 좁기 때문에 작가와 관람객들이 서로 자유로운 소통을 할 수 있어야만 발전할 수 있다”고 소통의 중요성부터 강조했다.
“생활 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문화에서도 질적 향상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현대 미술의 난해함을 이유로 미술관은 좀처럼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않고 있어요.”
박 관장은 “아직도 미술관에 함부로 들어오면 안되는 줄 알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동안 미술관·박물관이 폐쇄적인 운영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 와서 미술관의 문을 열어도 사람들은 쉽게 다가서지 못해요. 특히 많은 작가들이 관람객의 입장이 아닌 작가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작품을 만듭니다. 그러니 어려운 작품이 나올 수 밖에 없어요. 작품이 어려우니 사람들이 작품을 외면하는 건 당연하죠.”
박 관장은 박물관·미술관이 살아 남기 위해서라도 작가와 관람객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아무리 좋은 전시, 좋은 작품도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어요. 미술관과 박물관이 이제는 문을 더 활짝 열어야 합니다.”
박 관장의 이러한 운영방침에 따라 영은미술관은 관람객들과 지역민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미술관은 경기도 미술관, 광주 미협, 예총이나 문화원 등과 연계해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을 고민 중에 있다. 또 다른 지역의 미술관·박물관 5곳을 연계한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창작스튜디오 작가들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찾아가는 미술관’, ‘공방체험’을 비롯해 교육청과 연계한 방과 후 수업으로 ‘지역명예교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관람객의 수준이 낮다고 탓만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쉽게 설명해주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관람객들의 수준을 높여주는 것까지가 미술관·박물관의 역할이 아닐까요.”
박관장은 “관람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어떻게 이해하는 지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미술관이 오래 갈 수 있어요.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관람객들에게 다가간 만큼 사람들도 발맞춰 와줬으면 해요. 작가와 관람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미술관이 됐으면 합니다.”
채선혜기자 cshyj@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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