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들

-박정대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했지, 산뚱반도가 보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밤이 말달리는 소리, 위구르, 위구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씻어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가령, 서해안 먼 바다 어디쯤, 먼 대륙의 끝자락이 보일 듯 말 듯 외따로이 낯선 곳, 혼자서 배를 타고는 아무리 가도 가 닿을 수 없는 곳, 너를 껴안고 잠든 밤 눈보라 하얀 돛배를 타고서야 갈 수 있는 곳, 누구나 한번쯤 가보았을 법한 아니, 누구나 한번쯤 꿈꾸었을 그 환상의 섬, 멀리 서역 어딘가에서 사랑을 잃고 떠도는 자들의 밤바람 소리가 간간이 걱정스럽게 들려오기도 하는 곳, 영원히 유폐되고 싶은 사랑의 섬, 거기엔 불면의 입맞춤으로 날이 새는, 영원히 식지 않는 사랑의 묘약이 처마 끝 고드름에서 밤새 음악처럼 조금씩 녹아 떨어지는 곳이다. 그리하여 불멸의 사랑을 꿈꾸던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가봤을 법한 그 곳, 오늘밤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고 있을 그때 그 어디쯤 ‘청춘의 격렬비열도’!  

 

<이덕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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