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辱)에도 품격이 있다

지난 2006년 포루투갈 출신의 세계적인 축구스타 호나우두는 유럽축구연맹으로부터 한 경기 출장정지와 벌금 1만 프랑(약 750만원)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그 징계사유는 관중들에게 자신의 중지(가운데 손가락)를 위로 치켜드는 ‘손가락 욕’을 한 혐의였다. ‘욕’은 욕설의 줄임말이다. 욕설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저주하는 말, 남의 명예를 더럽히는 말’이다. 사람들이 흔히 ‘욕설을 퍼붓다’라고 하면 ‘상대를 저주하는 말과 명예를 더럽히는 말을 마구하다’로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행위를 뜻한다.

 

말을 할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욕’ 한 두 마디 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로는 말을 배우는 어린 아이들 조차도 종종 욕을 입에 담아 부모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한 조사에 의하면 타 언어에 비해 우리나라 언어가 욕의 종류와 양이 많다고 한다. 조사된 총수만 해도 무려 1천700여 가지나 되니 아무 말이나 욕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영어의 경우 아주심한 욕으로는 ‘Son of a bitch!’(창녀 새끼야), ‘God damn!’(제기랄), ‘Shut the hell up!’(입 닥쳐),‘Shit!’(제기랄) 등으로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중국어에는 ‘王八蛋’(개XX) 등 20여 가지가 고작이라고 하며 일본어는 우리와 유사하지만 ‘おろかもの’(멍텅구리), ‘ちくしょう’(짐승), ‘たわけもの’(바보, 천치), ‘へんたい’(변태) 등으로 30여개 정도 된다고 한다.

 

우리말에 욕이 많은 것은 귀한 것일수록 함부로 대해야 오래 간다고 하는 속신이 작용했을 것이다. 또 격식을 파괴한 대화가 더 친근감을 준다는 그릇된 언어관도 한 몫 했으리라고 본다. 물론 욕은 우리사회에 부정적 기능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먼저 욕은 원초적인 욕망이 쌓인 것을 풀어내는 카타르시스다. 몸속에 꽉꽉 막혀있는 앙금이나 분노를 입을 통해 풀어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 ‘욕’은 부정적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호의적일 수 있다. 인심 좋은 욕쟁이 할머니의 경우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많이들 쳐 먹어라 이놈들아!”란 식으로 말하며 푸짐한 밥상을 차려주는 욕쟁이 할머니의 인심 담긴 욕은 충분히 즐길만하다. 세 번째 ‘욕’은 문화의 감미료다. 전통문화 속에 양반의 위선을 꼬집고 조롱하며, 권력자의 비리와 부정을 꼬집는 탈춤 같은 것에 등장하는 욕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학작품의 욕은 단어를 풍부하고 기름지게 할뿐만 아니라 걸쭉한 구수함까지 느끼게 해줌으로써 욕이 없는 판소리나 문학은 오히려 무미건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을 금기하려는 것은 ‘욕’이 가져다주는 부작용과 폐해 때문이다. 그래서 ‘욕’을 금기하는 사회정서는 어느 나라에서나 엄중하게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의 속담에는 ‘혀는 뼈가 없어 약하나 많은 사람을 찌르고 죽인다’며 ‘욕’의 폐해를 말하고 있으며, 베트남의 속담에는 ‘사람의 혀에는 백 개의 칼날이 달려있다’며 ‘욕’을 금기하고 있다. 또한 미국 뉴저지주는 욕 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상소리 금지법’까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글로벌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욕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선진화된 언어관이 필요한 시기다. 따라서 욕도 분별해서 사용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사용보다는 의미를 알고 품격(品格)있게 활용하고 욕을 함으로써 생기는 결과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욕에 대한 사색도 필요하다. 칭찬은 마음만 있으면 되지만 욕은 마음과 생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욕을 자주하면 억압이나 스트레스를 오직 욕으로 풀어버리려는 중독성이 생긴다. 또한 듣는 이들의 귀가 더렵혀지고 욕을 한사람의 인격도 천격(賤格)해진다. 따라서 품격있는 욕을 해야 한다. 욕은 욕이로되 욕 같지 않은 말이 있는가 하면, 들으면 바로 귀를 씻어야 하는 상스러운 욕도 있다. 같은 물을 먹어도 독을 뱉는 뱀보단 꿀과 우유를 생산하는 벌과 젖소가 되자.

 

신묘년, 토끼의 지혜로 ‘욕’도 융해해내는 이성과 지성을 겸비한 인격과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들어 보자.

 

장보웅 수원시 기획예산과 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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