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나무의 생명력

아침을 열면서

몇년 전 원주 사는 K시인을 따라 옻나무 밭에 간 적이 있었다. 어려서 옻 오른 사람을 동네에서 마주친 기억이 있었다. 징그럽기가 그지 없었다. 온 몸이 벌겋게 부어 오른데다가 부스럼이 더덕더덕한게 여간 볼썽 사나운 것이 아니었다.

 

약간 염려가 되었지만 수천 평 되는 평지에 옻나무만 가득 심은 옻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많은 옻나무 중 한 그루도 성한 나무가 없었다. 밑둥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흉칙스런 칼자국이 쭉 나있었다. 어떤 옻나무는 칼금을 수없이 맞은 채로 서서 죽은 나무도 있었다.

 

K시인의 설명에 의하면 옻칠에 쓰이는 옻나무 진은 칼로 나무에게 깊게 상처를 낼 때 그 곳에 고인다고 한다. 칼을 맞은 옻나무가 온 힘을 다해 그 상처를 치유하려고 상처있는 쪽으로 진액이 몰려간다고 한다. 그 때 사람들은 그릇을 거기다 대고 흐르는 진액을 받는다.

 

옻나무 깊은 고통속에 진액 얻어

 

다음 진액을 받기 위하여 상처가 있는 그 나무에다 다시 새로운 칼금 서너 개 더 그어놓으면 그 부위에 진액이 몰려 사흘 후면 많은 옻액을 수거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수없이 칼금을 맞은 옻나무는 죽게 되고 새로 심은 옻나무는 칼을 맞게 되는 줄도 모르고 무럭무럭 자라난다고 했다.

 

그 날, 옻나무밭에 옻나무의 상처들을 바라보면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아름다운 질 좋은 윤기를 낼 수 있는 옻칠이 그런 고통 과정을 견디며 얻어지는 줄 몰랐다.

 

옛날에 부자들은 관을 썩지 않게 하려고 관에다 비싼 옻칠을 두껍게 입혔다고 한다. 오랜 시간 썩지 않고 땅 속 습기에도 견디는 까닭은 이런 고통스런 옻나무의 삶에서 연유된 것이 아닐까.

 

우리 몸도 옻나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몸에 상처가 생기면 우선 그곳이 통증과 함께 부어오른다. 이는 우리 몸의 에너지가 상처 난 곳으로 이동하여 힘이 총 집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치료하고 나도 상처는 금세 낫지 않는다. 서서히 통증이 가시면서 집합된 에너지도 긴장을 풀고 서서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상처 이기는 회복력 우리몸과 닮아

 

과일을 깎다가 잘못하여 손가락을 살짝 베기만 해도 그 쓰라림은 아물 때까지 계속되는데 온 몸에 칼금을 맞고 진액을 흘리고, 멈출 때가 되면 또다시 칼금을 그어대는 사람들에게 옻나무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래서 그 옻칠은 그렇게 강력한 칠이 될 수 있고 썩는 것도 멈추게 할 수 있으며 백년 이백년 지워지지 않는 칠로 남아있게 되나보다.

 

옻나무밭에 다녀와서 나는 한 편의 시를 썼다.

 

‘원주, K시인을 따라/ 옻나무밭에 갔었다./ 심장은 놔두고/ 밑둥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수십 번 더 그어진 칼금/ 저건 숲이 아니다./ 고통이 득실거리는 겟세마네 동산./ 죽을까 말까 머뭇거릴 때마다/ 다시 메스를 댄다./ 심장은 두근거리게 놔두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피를 내주고 있다./ 몇백 년 썩지 않을/ 힘을 내주고 있다./ 옻나무밭에서/ 수천 개의 못자국을 보았다./ K시인과 함께’

 

내가 시를 가르치는 문예창작학과, 시창작 시간에도 옻나무의 고통에 대하여 학생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해 가을 학생들과 문학기행 가는 길에도 원주의 그 옻나무밭을 들렀다. 작가가 되는 길, 시인이 되는 길에 꼭 필요한 실습장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옻나무밭에 다녀온 것과 가지 않은 것과는 사유의 깊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옻나무밭에 서있는 것이 아닐까.

 

최문자 협성대 총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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