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지난해는 다사다난했다. 내게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그중 제6기 경기도 신규공직자 입문과정에 입교해 교육을 받고 수료했던 기억이 난다. 수료식이 있던 날에는 새벽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북수원 언덕위에 우뚝 솟은 경기도 인재개발원 13층에서 내려다보는 파장동 일대와 이목리 노송지대는 동화속의 마을이 되고 아파트단지도 하얀 옷을 갈아입고 잠들어 있었다. 온 누리가 포근하고 평화로웠다.
눈은 소년시절에도 그랬고 50세를 훌쩍 넘긴 지금에도 나를 들뜨게 한다. 창가에 기대어 아직 녹지 않은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문득 4주간의 교육과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지난해 11월초 경기도인재개발원에서 4주간의 신규공직자 입문과정에 입교하라는 교육명령을 받고 난 무척이나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선 경기도인재개발원의 ‘인재’라는 용어가 맘에 들었다. 공무원을 인재로 여기는 것 같아 우쭐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기쁜 마음도 잠시, 또 한편 걱정도 컸다. 늦깎이 공무원이 된 처지라 아들 딸 또래의 신규공직자들과 합숙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교육과정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드디어 11월22일 입교식 날이 밝았다. 2009년 8월 경기도 지방공무원 공개채용시험에 합격한 신규 공직자들이 각 시·군에서 수원에 소재한 경기도인재개발원에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새내기(?) 남·여 공무원들의 얼굴에는 개선장군의 위용과 눈에서는 철판도 뚫을 수 있는 광채가 빛을 발했다.
입교식에 이어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됐다. 경기도인재개발원 신규공직자입문과정은 크게 직무교육, 정신교육(공직가치, 공직윤리, 안보 및 국가관), 현장학습 및 액션러닝, 미래사회와 창의력, 친교 및 체육활동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 교육은 70년대 필자가 받았던 학교교육방식과 사뭇 달랐다. 첫째는 창작의 단계다. 강사의 일방통행식 교육에 익숙해있던 나는 피드백과 참여로 상호 소통하는 단계를 거쳐 이제는 거칠고 투박하나마 교육생 스스로 분임별 창작의 결과물을 내놓아야하는 단계에 이른 것에 깜작 놀랐다. 아무리 졸작이라도 창작의 산고가 얼마나 힘들고 분임원간 협동이 왜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둘째로 교육방법의 스토리텔링과 시각화다. 각 과목의 전문 강사나 교수님들이 학습내용을 스토리텔링으로 엮어서 재미있게 강의하며 생생한 영상자료를 도입하여 학습내용들을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실내교육과 현장학습, 현답활동을 적절히 병행하여 교육효과를 향상시키며 교육생들의 흥미를 촉진시켰다.
마지막으로 소셜 네트워크다. 친교 및 체육활동시간이 적절히 안배되어 있어 요즘 한창 사회에서 중요시되는 인적 사회조직의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특히 나는 신규공직자입문과정을 통해 두 번 전율했다. 첫 번째는 국학 과목시간에 본 짧은 영상으로 일제강점기 우리의 무명 독립 운동가들이 일경에 붙잡혀 작두에 머리가 잘리고, 잘린 수많은 머리들이 대롱대롱 줄에 매달려 있는 장면이었다.
두 번째는 입교식 첫날, 신규공직자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113 명 전원은 경기도인재개발원 원장님과 함께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며 삼군 군악대의 연주에 맞춰 국기에 대한 맹세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올렸다. 이런 군대의식들에서 멀어져있었던 나는 조금 겸연쩍었지만 오랜만에 가져보는 엄숙함이 싫지만은 않았다.
30여 년 전 ROTC(학사장교) 시절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하여 여의도광장에서 행했던 절도 있고 씩씩한 열병과 분열의 느낌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민간인 포격이 이어져 긴장감이 고조된 때이기에 내 마음에 더욱더 와 닿았다. 국가에 대한 소중함이 되살아났다고나 할까.
이제 나는 임지로 떠나는 출발선상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스프린터처럼 팽팽한 긴장감과 집중력으로 지방행정과 민원의 일선에서 제 역할을 다하기로 다짐해본다. 다른 신규동료공직자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리라. 서대운 가평군 교육협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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