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과 시인

인간에게 두려운 것 두 가지가 있다면 ‘차가워지는 것’과 ‘딱딱해지는 것’일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차가움과 참을 수 없는 딱딱함은 분명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렇게 뜨거웠던 사랑, 열정, 소망, 생각이 점점 식어버릴 때, 우선 겁이 난다. 또 그렇게 말랑말랑하고 유연했던 것들이 굳어져서 딱딱해질 때 또 한 번 겁이 난다.

 

나이가 들면, 언어가 딱딱해지고 행위가 차가워진다. 노인들의 얼굴에서 희로애락이 점점 지워지고 평면처럼 밋밋해 지는 것은 바로 생각과 몸이 식어가고 있고, 딱딱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나이들면서 뜨거운 감정도 식어가

 

연탄을 소재로 시를 쓴 시인이 있다. 문창과에서 시를 가르칠 때 아래의 시를 많이 인용했다.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전문)

 

위의 시를 쓴 안도현 시인의 쓴 글에 의하면 독자들은 이 시를 읽으면서 속이 뜨끔했다고 말하고 있다. 독자만 뜨끔한 것이 아닐 것이다. 남을 위해 뜨거운 적이 있느냐고 너에게 묻기보다는 모두 자기 자신을 향해 묻고 있는 것이다.

 

시커먼 검정색의 자기 몸체가 뜨겁게 다 타버리고 나면 나중엔 허연 재만 남게 되는 연탄, 연탄이지만 이 연탄이 뜨거울 동안은 추운 사람, 배고픈 사람, 마음이 시린 사람들을 따스하게 녹여준 적이 있다. 그러나 자기를 녹여준 그 사람들은 연탄이 다 타고나면 허옇게 식은 쓸모 없는 재를 발로 차거나 부숴버리기 일쑤다.

 

결국 가루가 될 때까지 사람들 곁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겪는 연탄을 글자 수가 겨우 30자가 넘는 시로 응축한 이 시는 좋은 시임에 틀림이 없다.

 

나이를 먹게 되면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달아오르지 않는다. 또 딱딱한 것들이 금방 풀어져 말랑말랑해지지도 않는다. 이런 증상이 있게 된다면 분명 위기의 조짐인 것을 느껴야 할 것이다.

 

한창 뜨거울 때, 한창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울 때 이 뜨거움과 부드러움의 힘으로 누군가를 힘껏 사랑하고 힘껏 돕고 힘껏 녹여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일이다. 평생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 되보지 못했다면 참으로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연탄처럼 온기 나누는 마음 가져야

 

별안간 ‘나이’라는 제목으로 썼던 시가 생각난다.

 

‘나더러 색깔 없는 나이라 하대요/ 이 색깔에서 저 색깔로 넘어갈 때/ 힘줄 버티며/ 안 넘어가려고/ 버팅기던/ 숨찼던 그 색깔의 고개 마루턱/ 나더러 언덕 아래로 미끄러지는 나이라 하대요/ 어느 날 피식/ 숫자의 자모가 끊겨나가 언덕을 구르다/ 강 속으로 쑥 빠져버린 나이/ 모래 언덕에 끌어내/ 자모 맞춰놔도/ 흠뻑 젖어 있는 물먹은 나이/ 이 지루한 무채색의 시간’

 

나이와 함께 식어가는 것들을 노래한 씁쓸한 시적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나이와 뜨거움이 꼭 관계되는 것만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가슴이 절절 끓는 뜨거운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또 나이가 어려도 얼음처럼 차가운 어린 학생들도 있다. 재 가슴이 될 때까지 연탄 가슴일 때 사랑하고 녹이고 따스한 불길을 나누어야 할 것 같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온 겨울이었다. 영하 17도가 넘는 추위, 이런 추위도 녹여줄 수 있는 뜨거운 연탄의 가슴을 가진 사람 어디 없을까?  최문자 협성대 총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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