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나무 - 정병근

여차하면 가리라

 

옷깃만 스쳐도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너에게 확 옮겨 붙으리라

 

옮겨 붙어서 한 열흘쯤

 

두들두들 앓으리라

 

 

살이 뒤집어지고

 

진물이 뚝뚝 흐르도록

 

앓다가 씻은 듯이 나으리라

 

 

네 몸의 피톨이란 피톨은

 

모조리 불러내어 추궁하리라

 

 

나는 지금 휘발유 먹은 숨결,

 

너를 앓고 싶어 환장한 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오랜 진화의 과정을 거쳐 터득한 지혜 중의 하나가 제 몸에 독성을 지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독성이 지나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옻나무, 지나친 보호본능으로 독을 키우다가 끝내 왕따를 당하고 외로움의 천형을 받은 옻나무는 너무 외로워서 누군가 가까이만 가도 확 옮겨 붙는다. 한 번 옮겨 붙으면 밤 낮 네 몸에 진물이 흐르도록 몸을 탐하며 네가 사랑을 아느냐고 세포 깊숙이 추궁하다가 어느 날 감쪽같이 떠나버리는 사랑. 한쪽 옆구리가 시려 사랑을 앓고 싶어 환장한 사람들아, 옻나무에게 가서 한번 안겨봐라. 아-흐 옻나무에게 연애 한 수 배워보아라.  <이덕규 시인>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