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은 유난히 추웠건만, 촉촉한 봄비가 마른 땅을 적시는 걸 보니 봄이 오긴 온 모양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맞이 행렬이 산과 들을 찾을 것이다. 행락철만 되면 필요 이상으로 친절한 기상예보를 자주 접하게 된다.
“내일은 고기압의 영향으로 황사가 심하게 불어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급적이면 나들이를 삼가 주시고 외출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손발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정도는 참 좋은 예보다. 건강에 관심이 높은 현대인들에게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건 고마운 일이다.
“내일은 전국적으로 비가 올 확률이 삼십 퍼센트, 곳에 따라 때에 따라 비 또는 구름이 끼겠습니다. 나들이를 계획하신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쯤 되면 나들이를 하지 말라는 권고와 같다. 비가 온다는 건지 안 온다는 건지 명확하지도 않고 곳에 따라 때에 따라 오거나 안 오거나 한다는 부연설명까지 곁들여 준다. 비가 안 온다고 예보했다가 쏟아지면 감당하기 어려운 항의를 받게 될 테니까 예보자의 입장이 일견 이해는 간다. 하지만 관광지의 경우, 비가 오지 않더라도 토요일이나 공휴일 전날 이런 예보가 나왔다면 최소한 절반 이상의 영업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야외 공사장에서 일하는 이들도 비가 예보되면 영락없이 공치는 날이 되기도 한다. 드러내 놓고 항의하지는 않겠지만 아마 전국적으로 상당한 손실이 일어날 것이다.
회피성 예보가 관광 손실 주범
더 이해되지 않는 예보가 있다. 기상대의 표현은 아닐 것으로 믿고 싶지만, 언론에 보도되는 날씨예보는 더 한심하다. “내일은 더 춥다”는 날씨 보도다. 지난겨울에도 사나흘에 한 번은 그런 보도가 나왔고 그러는 사이에 봄이 찾아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꽃샘 추위”, 지난 수십 년 동안 봄마다 나타나는 판박이 제목에 얼마나 식상해 할지는 아랑곳하지도 않는다. 이런 헤드라인은 관광지뿐만 아니라 일상의 건강 리듬까지도 망가뜨린다. 요즘은 인터넷 정보를 통해 지역별로 실시간 날씨 정보가 전달되니 굳이 신문 방송에서까지 일기예보를 할 필요가 있는지 재고해볼 만하다.
한국은 사계절 맛이 명확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꽃피고 새가 지저귀는 봄 맛, 땡볕과 그늘과 시원한 바닷가의 여름 맛, 천고마비 단풍철의 가을 맛, 눈밭에서 눈덩이 굴리는 겨울 맛을 느낄 수 있는 천혜의 땅이 한국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명확하게 구분돼 있는 사계절 탓에 냉·난방비를 따로 부담해야 하고 동남아시아나 추운 나라들에 비해 옷값도 더 들어간다. 관광지의 수익구조는 계절비용의 이중부담으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 스키장은 봄부터 가을까지 개점휴업이고 수영장은 한겨울에 문을 닫아야 한다. 다른 관광 국가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계절 맛에 있다.
한국 관광의 활로는 사계절을 정복하는 데 있다고 한다. 골프장이 스키장과 워터파크까지 겸해야 수익구조를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 투자비와 회수 가능성을 따져보면 이익을 내기 어렵다. 한국의 관광산업이 봄과 가을을 제외하고 여름과 겨울까지 통틀어서 산업화하기엔 아직 요원한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12월부터 3월까지를 아예 비수기로 설정해 놓은 곳도 많다. 유독 관광산업에 비정규직이 많은 것은 연중사업으로서의 한계 때문이다.
사계절 살리는 게 한국관광 활로
굴뚝 없는 소프트 산업으로서의 관광산업이 뿌리를 내리려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계절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정부가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주변 환경의 안정과 아이디어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주변 환경은 낡은 법과 제도를 현실에 맞게 고치는 일이다. 아이디어는 남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려야 할 사업자의 책임이다. 닭갈비가 잘 팔린다고 온통 닭갈비 동네가 되었을 때 최초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본다. 관광저작권에도 관심을 둘 때다. 기상예보에도 신중을 기해야 하고 그걸 받아쓰는 언론의 호들갑도 줄어드는 것이 좋다.
강우현 한국도자재단 이사장·남이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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