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치의 꽃을 기대하며

어느 시골에 가업을 잇는 단란한 신혼 가정이 있다. 조부모님께서 아파트는 몇 평 크기로 매입해야 되고, 아이는 몇을 낳아야 되며, 가전 제품 구매의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간섭을 한다. 거기에 더해 부모님도 시시콜콜한 일까지 가이드 라인을 쳐서 옭아 맨다. 이유는 단 하나 ‘너희들은 집안의 가업을 물려 받았고 노파심에서 그런거’라고 한다. 꼭 ‘봉숭아 학당’ 같은 집안이다. 전술한 사례는 교과부와 시·도교육청의 학교에 대한 교육행정 전반의 간섭과 유사하다.

 

교원들의 승진규정을 예로 들면 교과부 기준은 경력점수 정도만 제시하고 각 시·도 교육청도 최소한의 요건만 규정하면 된다.

 

그 후 세세한 규정은 지역교육청에 일임하는 것이 자치정신에도 맞고 합리성과 타당성에 더 만족할 수 있다. 수원이나 성남 등 대도시 교사에게 벽지점수와 농·산·어촌 점수가 왜 필요한가? 승진후보자의 선정은 교과부에서 배정받은 인원수만큼 지역교육청의 교사 인원수 비례로 할당하면 된다. 발령은 경찰공무원의 경정(국가직) 이상처럼 전국을 상대로 발령하듯 시·도 교육감이 도내 각 시·군으로 발령하면 된다. 요약하면 현행 승진규정을 지역교육청에 거의 위임한다고 보면 된다. 더 나아가 교직원 임용권까지도 위임해야 진정한 교육 자치를 꽃피울 수 있다.

 

차제에 공무원 조직도 글로벌 기업의 경영효율 및 시장 메커니즘을 인사과 및 예산권에 도입할 시점이 되었다.

 

교과부는 교육의 철학적 배경과 예산 지원 기능만 하고 기타는 시·도 교육감을 경유하여 지역교육장에게 대폭 위임해야 한다. 이와 같은 구조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OECD국가가 거의 다 채택한 제도이고 워싱턴 D·C의 미셀 위 전 교육감의 교육개혁도 제도가 뒷받침되어 성공할 수 있었다.

 

무늬만 교육자치가 되어서는 공교육의 정상화는 요원하다.

 

교육에 인생을 묻으려는 교원들에게 현행 승진규정은 공리(公利)와 사리(私利)를 바꿔치기한 면이 없지 않다. 같은 맥락에서 역사는 우리에게 교육과 정치는 분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왜냐하면 교육과 정치는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는 득이 아닐 뿐더러 정답도 아니다. 파열음을 내며 법정공방까지 가는 내부형(무자격) 공모교장도 따지고 보면 서로 다른 잣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기초 자치를 통하여 학부모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교육적 욕구를 공교육을 통해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교육청의 완전한 자치가 선행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선진국의 교육시스템은 학부모의 목적과 제도의 목적성이 정방향 정렬될 때 창출되는 가치가 의외로 크다는 것을 알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정책이 바람 잘 날 없는 것은 중앙집권의 고성장 철학의 주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보내는 ‘레드카드’다.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는 미래보다는 현재 눈앞의 이익에 더 집착하고 대중 인기 영합의 유혹에 늘 노출되어있다.

 

우리 세대가 나무를 심으면 다음 세대는 그늘을 얻을 것이고, 우리가 나무를 베어버리면 다음 세대는 땡볕에서 고생할 수밖에 없는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2004년 제프리 존스 주한 미 상공회의소 명예회장은 한국인들에게는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고 한 말을 고위직은 꼭 음미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의 어두운 그림자는 유명 연예인이 군대에 가는 당연한 병역 의무를 두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며 호들갑을 떠는 사회다.

 

하긴 병역 면탈하려 손가락을 잘라도 선출직으로 뽑아줬던 유권자도 한심하기는 마찬 가지다.

 

교육의 기초 자치라는 빠르고 편한 비행기를 마다하고 나룻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려다 결국 목숨까지 잃는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김기연 한국초등교장協 홍보위원장 경기교총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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