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몰골만 겨우 사람 꼴 갖춰 밤 어두운 길에서 만났더라면 지레 도망질이라도 쳤을 터이지만 눈매만은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속 같아 내라도 턱하니 피기침 늑막에 차오르는 물 거두어 주고 싶었네
산가시내 되어 독 오른 뱀을 잡고
백정집 칼잽이 되어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 후후 불며 먹이고 싶었네. 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 선한 물 같이 맛깔 데인 잎차같이 눕히고 싶었네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내 할미 어미가 대처에서 돌아온 지친 남정들 머리맡 지킬 때 허벅살 선지피라도 다투어 먹인 것처럼
어디 내 사내뿐이랴
시절이 수상하여 남정네들 뿔뿔이 흩어져 험한 세상 떠돌 때, 어린 것들과 부모와 고향 선영을 지킨 것은 여자였다. 나라를 되찾겠다고, 세상을 바로 세우겠다고 떠돌다가 몸 망가져 간신히 눈빛만 살아서 돌아온 사내를 살려낸 것도 여자였다. 독 오른 뱀을 덥석덥석 움켜쥐는 땀내 나는 산가시내면 어떻고 피칠갑의 여자 백정이면 어떠랴! 어느 남자를 막론하고 이런 여자 앞에서 무릎 꿇지 않을 자 누구인가, 겨우 스물 갓 넘었을 때, 이미 세상을 다 끌어안고도 남을 만큼 품이 넓었던 저 시인을 감히 대모라 불러도 되겠다.
<이덕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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