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신정아 가짜학위 사건’으로 시작된 학력위조 논란은 연예인, 교수, 사회 저명인사 등으로 확대돼 사회적 문제가 됐다. 그런데 최근 신정아씨는 1년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고 나와 자신의 수감번호 ‘4001’를 제목으로 한 책을 출간함으로써 다시한번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신정아 가짜 학위 파문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실력보다는 간판을 중시하는 사회분위기 즉 ‘학력 만능주의 풍토’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학원 강사 이지영씨는 고졸학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고 속인 채 7년간 KBS 라디오의 영어강의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그는 유명어학원에서 소문난 인기강사였으며 학력을 실력으로 극복하기 위해 남보다 더 노력했다고 한다. 잠도 안자고 강의준비를 했으며 주말에는 무료공개 강의를 자청했다고 한다.
누구나 인정하는 뛰어난 영어실력을 보여줬지만 처음부터 고졸학력을 내세웠다면 유명학원의 강의 기회조차도 얻기가 불가능 했을 것이다.
다양한 요소로 평가돼야
소위 명문대학 출신이라면 국가기관이나 기업에서 채용 시 무조건 우대받고 외국학위라면 덮어놓고 대단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다.
물론 남보다 나은 학력을 갖추기 위해 들인 노력과 능력은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학력을 개인의 특성을 대변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로써 평가되어야지 개인의 도덕성이나 창의성을 드러내는 요인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개인의 평가에서 학력을 비롯한 다양한 요소들이 통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필자는 최근 경력직 공무원 선발위원으로 참여했다. 법무관련 계약직 공무원 1명을 선발하는데 3명이 응시했다. 면접을 하기 전에 이력서, 응시지원서 등 수험관계서류를 확인한 결과 첫 번째, 두 번째 수험생은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졸업했고, 세 번째 수험생은 별 볼일 없는 대학을 나왔다는 것을 확인했다.
통상적인 생각으로 첫 번째와 두 번째 수험생중 한명이 선발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이윽고 차례로 필기문답과 발표력, 구두면접 등의 평가가 시행됐는데, 의외로 첫 번째, 두 번째 수험생보다는 세 번째 수험생이 모든 평가 항목에서 우수했다.
필자뿐만 아니라 다른 두 명의 선발위원도 일치된 의견이었다.
세 번째 수험생은 일찍이 시골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늦은 나이에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꾸준히 공부해왔다고 했다.
속칭 명문대학 간판만을 보고 선입견을 가진 채 서류전형에서 세 번째 수험생을 탈락시켰다면 얼마나 불공정하고 억울한 일이 발생했을까. 간판보다는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고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경험이 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 신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가장 큰 요인이 외국인 감독 히딩크의 공평한 선수 발굴 및 선발 후 경쟁을 통한 꾸준한 선수 평가 작업에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축구 명문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더라도 선수가 소질과 성실성을 갖춘 기량이 있다면 누구나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었고, 일단 국가대표로 선발된 후에도 꾸준히 노력해 자신의 입지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을 때에 비로소 대표 선수로 활약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도적 뒷받침 이뤄져야
우리의 대학도 소위 ‘명문’학교에 입학 한 것만을 높이 평가할 것이 아니라 입학 이후에도 열심히 노력해야 졸업할 수 있고 대학 졸업 후에도 사회에 기여도를 높이 평가하고 보상해주는 사회적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또 대학의 편입제도도 더욱 활성화 할 필요성이 있다.
판·검사 임용에 있어서도 변호사 중에서 경험과 실력이 검증된 사람을 선발해야 훌륭한 사람이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4001’ 출간을 계기로 하여 간판보다도 실력 있는 사람이 존경받고 우대받는 사회 분위기가 실현되기를 소망해본다. 위철환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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