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이 아름다운 거리

디자인총괄추진단으로 근무지를 옮긴 직후 찾아간 곳은 경기도가 2004 년부터 시·군과 함께 추진해 오고 있는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조성사업’ 현장이었다. 파주시, 안양시, 군포시 등 세개의 도시를 가보았는데 나의 객관적인 평가를 말하자면 이 사업은 예산이 참으로 요긴하게 쓰였고 유·무형의 성과가 컸다는 점이다.

 

먼저 유형의 성과를 말해보자. 한마디로 ‘간판이 도시의 얼굴’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이들 거리에서는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인 다양성과 통일성이 모두 살아 있었다. 업소마다 각기 다른 크기로 여러개 난립되었던 간판들이 철거되고 새롭게 일정한 장소와 규격하에 한두개씩만 설치되었다. 반면 글자 모양과 색깔은 다채롭고 예술성을 가미하되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친근감이 있어 보였다. 야간에는 LED등을 써서 야간경관 개선과 절전효과를 거두었다.

 

특히 안양 1번가는 어지럽게 얽혀있던 전선을 지중화하여 단정하고 깨끗한 문화·예술의 거리로 탈바꿈됐으며 유럽의 고급 쇼핑몰 같은 이국적 정취도 자아냈다. 각 상점마다 들어가고 싶었고 식당들의 음식은 모두가 맛있을 것 같은 매력도 느껴졌다. 파주의 경우는 누구나 선입관적으로 가질 수 있는, 접경지역·군사도시 특유의 단조롭고 삭막한 이미지가 따뜻한 남쪽 도시처럼 깔끔하고 포근한 도시로 변모됐다. 군포시의 경우는 시의 중추적인 기능을 하는 시청과 마주보는 중심거리가 사업지로 선정되어 관청과 상가가 조화를 갖춘 도심지를 이루고 있다. 특히 시청에서 상가로 직접 통할 수 있게 하는 육교는 화려하지 않으면서 동화 속 같은 단아한 모습으로 공무원과 시민을 보다 가깝게 연결하는 다리로서의 상징적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무형의 성과를 보자. 첫째, 커뮤니티 즉 공동체 인식의 태동이다. 상인들이 기존의 여러 간판들을 철거하고 한두개만 다시 설치하는 것은 조선말기 단발령과도 같이 귀찮고 괴로운 일이었지만 기꺼이 사업에 협조해 주었다. 내 이익보다 공동의 이익을, 혼자 튀는 간판이 아니라 주위와 조화를 이루는 ‘공동선’의 가치를 존중한 결과 ‘명품 거리,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데 성공한 케이스다. 군포의 경우는 시범사업이 이웃마을에도 파급되어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예산지원 없이 추진한 바람직한 현상도 생겼다.

 

둘째는 지역경제와 활력의 제고효과이다. 상인들이 과장되고 커다란 간판에 의지하기 보다는 품질에 노력을 기울였고 여기에 거리가 잘 정돈된 까닭에 시민들의 (특히 가족단위, 젊은 층) 방문이 늘었다. 환경의 수준이 높아지니까 상인과 소비자들의 패턴과 품격도 높아져 이곳이 단순히 사고 먹기 위해 찾는 물리적 ‘공간’이라는 차원을 넘어 상호 교감하는 소통의 ‘장소’로 변모되고 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세 번째로 도시의 브랜드가치와 경쟁력 상승효과를 들 수 있다. 파주를 예로 들면 안보관광지라는 본래의 이미지 외에 남부지방의 진주나 전주 같은 도시 못지않은 깨끗한 문화도시라는 새로운 관광자원을 일구어낸 셈이다. 안양역 앞 안양1번가는 대부분의 역전앞 상가가 비위생적이고 우범지역이라는 편견을 말끔히 일소한 대표적 사례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어려운 정책 중의 하나인 간판 정비사업을 끈질긴 설득과 대화로 사업을 성취해 낸 담당 공무원들의 집념과 노하우도 그 도시의 경쟁력에 기여한 또 하나의 소프트파워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체득한 경험과 지식은 주민과의 갈등이 수반되는 여러 정책들을 추진함에 있어 소중한 교범으로 활용될 것이다. 실제로 전국 각지에서 안양은 20 09년에 151명, 파주는 2010년에 152명의 공무원들이 시책견학을 위해 방문했다.

 

경기도의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조성사업’이 올해로 8년째를 맞고 있으며 그동안 이 사업에 동참하는 시·군들이 늘어가고 있다. 간판도 ‘공공재’라는 인식하에 공무원, 상인, 시민이 합심하여 더 큰 가치를 실현하는 이 사업이 계속 확산되어 대한민국의 대표디자 인정책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세정  경기도 디자인총괄추진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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