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꽃을 애무하는 山 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微動 두 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 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 울음 서른 되
상다리 부러지겠다. 저 푸짐한 밥상! 배부르다. 먹은 것도 없이 넉넉해져서 저 ‘양철집’ 안에 들어 한잠 달게 자고 싶다. 소리와 향기와 작은 움직임들을 잘 섞고 버무리고 끓이고 부치고 무쳐서 한 상 잘 차려 내놓은 저 공양은 고요한 산사 주변의 풍경이 그 재료이다. 그런데 겁나게 긴 저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 구천 발’의 국숫발을 누가 다 먹나, 그야말로 요량도 못하고 쏟아지는 소낙비와 방앗간 쌀 쏟아지듯 금세 수북이 쌓이는 저 서른 되의 매미 울음, 그리고 이 시의 백미인 제 몸이 열리기 전의 백도라지, 꽃 피기 전의 그 미세한 떨림은 정말 너무 슬프고 귀하고 그 양이 적어서 함부로 젓가락을 갖다 댈 수도 없겠다. 저런 반찬은 이제 막 사경을 헤매다가 눈을 뜬 사람의 한 숟갈 흰 죽 위에 한 점 올려주면 금세 기운이 나서 벌떡 일어서겠다. 이덕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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