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나 전문의 등 의학적 소견 신중히 환자 사전 연명치료 중단 지시 없을 땐 평소 가치관·객관적 사정 등 종합 판단
얼마전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어르신이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고 현재 인공호흡기를 달고 치료 중인데, 어르신이 쓰러지기 전에 평소 아는 스님에게 자기가 쓰러지면 인공호흡기는 달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해 놓았다고 하는데, 스님에게 말해 놓은 것이 법적효력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문의하였습니다. 너무나 간단한 질문이고,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알지 못하나, 인공호흡기의 제거에 대한 대법원 판례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대법원은 의학적으로 환자가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이 상실되어 회복할 수 없으며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이를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라 합니다)에 이루어지는 진료행위(이를 ‘연명치료’라 합니다)는, 질병의 호전이 아니라 현 상태를 유지하는 치료에 불과하므로, 진료중단의 허용 가능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되,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환자가 회복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법원은 주치의의 소견뿐 아니라 사실조회, 진료기록 감정 등에 나타난 다른 전문의사의 의학적 소견을 종합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하고, 법원에 소가 제기된 경우가 아니라면 전문의사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 등의 판단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즉, 환자가 의료인으로부터 직접 충분한 의학적 정보를 제공받은 후 이를 바탕으로 미리 의료인에게 자신의 연명치료 거부 내지 중단에 관한 의사를 밝힌 경우여야 하고, 이러한 사전의료지시도 환자 자신이 직접 의료인을 상대로 하여 작성한 서면이나 의료인이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의사결정 내용을 기재한 진료기록 등에 의하여 진료 중단 시점에서 명확하게 입증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환자의 사전의료지시가 없는 상태에서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한 경우가 많을 것이고, 이때는 환자 자신이 연명치료의 중단을 요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 등에 비추어 연명치료의 중단을 선택하였을 것이라고 추정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데, 이러한 환자의 의사 추정은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이를 참고하고, 환자가 평소 가족, 친구 등에 대하여 한 의사표현, 타인에 대한 치료를 보고 환자가 보인 반응, 환자의 종교, 평소의 생활 태도 등을 환자의 나이, 치료의 부작용, 환자가 고통을 겪을 가능성,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치료 과정, 질병의 정도, 현재의 환자 상태 등 객관적인 사정과 종합하여, 환자가 현재의 신체상태에서 의학적으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는 경우 연명치료 중단을 선택하였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라야 그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따라서 스님에게 말씀드린 것이 특별한 법적효력이 있다기보다는 이러한 의사를 추정하는데 하나의 참고자료가 될 것입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인하여 환자 자신이나 가족들이 고통을 받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경시하여서도 안 될 것이기에, 무엇보다 신중한 판단이 요청되고, 위와 같은 조건을 갖추었을 때만 비로소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를 제거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심갑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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