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법의 목표는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고 관련 국가기관들 사이의 권한과 의무도 정의실현과 인권보장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따라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검찰과 경찰간 수사권 조정 논의를 어느 기관이 권한을 더 많이 가지느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못하다.
수사권 조정은 국가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이 달라질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수사의 본질과 검찰, 경찰 제도 전반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와 논의를 거쳐 결정되어야 한다.
수사라는 것은 그 자체의 속성상 수사 대상인 일반인들에게 엄청난 부담과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수사의 속성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든 법률가이자 준사법기관인 검사로 하여금 수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탈법행위를 감독하고 통제하도록 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경찰에 대한 검찰의 감독과 통제는 법치국가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제도로서 수사권 조정 논의에 앞서 전제되어야 하는 사항이다.
수사권을 검사와 경찰이 나누어 가짐으로써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은 수사의 본질을 오해한 것이다. 수사는 경쟁의 원리가 도입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국가의 수사권이 통제 없이 여러 기관에 나눠지게 되면 통일적인 사건처리가 불가능해지고 국민들은 더 많은 인권침해의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수사에는 적법성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기관과 기능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수사권은 검찰과 경찰만의 문제가 아니다. 각 분야에서 경찰을 대신해 수사권을 가진 행정관청 소속의 특별사법경찰이 12만 여명에 이른다. 동일한 피의자를 상대로, 경찰과 특별사법경찰의 수사권이 충돌할 때 이를 조정할 아무런 장치가 없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국가의 수사권은 중구난방으로 난립하게 되고 국가 형벌권의 통일적 실현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만다.
법에서 어떤 국가기관으로 하여금 특정 분야에 관해서는 타기관의 감독·통제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국가 전체 차원에서 전문 기관의 관여가 필요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지 그것이 기관 사이에 우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부처가 소관분야에 관한 법령을 제정하면서 법제처의 검토를 거친거나, 예산 편성시 기획재정부로부터 통제를 받도록 하는 것이 법제처나 기획재정부가 다른 부서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은 결코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사업무를 수행하는 모든 국가공무원으로 하여금 검사의 지휘와 통제를 받게 하는 것 역시 검찰이 우월한 조직이어서가 아니라 검찰제도 자체가 태생적으로 이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제도는 근본적으로 사법경찰을 지휘, 통솔함으로써 수사에 있어 적법절차를 준수하도록 하기 위해 탄생된 것이다.
검찰의 지휘, 통제 기능을 없애는 것은 검찰제도의 근본 취지를 부인하는 것이다. 수사에 있어 검찰과 경찰을 경쟁하는 체제로 두어야 한다면 차라리 검찰이라는 제도를 없애고 사법경찰을 여러 개 두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수사는 경쟁의 원리가 적용될 분야가 아니며 오히려 엄격한 통제가 필요한 분야이다.
통제와 지휘라는 용어가 주는 부정적인 어감으로 인해 마치 검찰제도 자체가 문제있는 것처럼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수사에 있어서는 효율보다 국민의 인권보장이 더 중요한 가치이므로 경찰에 대한 지휘와 통제는 반드시 있어야 할 장치이다.
사법개혁은 먼 장래를 내다보고 이뤄져야 한다. 사법제도의 근간인 검찰제도를 부정하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올바른 방향의 사법개혁인지를 심사숙고해야 할 때다.
안효정 검사·수원지검 안산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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