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에 대한민국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종합 의학서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세계기록유산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는 한국의 기록유산을 세계가 인정한 사건이며 아시아에서 최고의 기록 문화강국임을 세계만방에 떨친 기분 좋은 소식이기도 합니다.
당시 유네스코는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유를 “오늘날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는 인류 전체의 건강과 안녕을 위한 현대 우리 시대의 위대한 기록유산이자, 미래의 귀중한 의학 자산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한국의 전통의서인 동의보감이 현대에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의학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며 한의약을 육성해야 할 과제를 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계 각국이 동의보감의 진정한 가치를 인식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서 동의보감의 정수(精髓)라 할 수 있는 한의약 위치는 초라한 모습으로 정체와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무엇보다 한의약을 과거의 유물로만 취급하려는 잘못된 인식과 정부 당국의 편협한 서양 의학 일변도의 정책에서 비롯된 면이 적지 않습니다. 한의약의 정의를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약을 기초로 한 의료행위’로 못박아 한방 의료기관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해, 한의 진단 및 처치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가로막고 형국입니다.
국민의 의학적 지식은 날로 발전해 가고 세계 의학의 조류도 융합의학으로 가고 있는 마당에 정부의 한의약 육성정책은 무관심과 무시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의료소비자로부터 한방의료기관을 외면케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중국은 이미 지난 1982년 중화인민공화국헌법 제21조에 ‘發展我國傳統醫學(전통의학을 발전시킨다)’이라고 명시, 중 의약의 현대화·세계화를 통해 세계 각국의 보완대체의학 시장을 석권하며 엄청난 국부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현재 국회에는 ‘한의약육성법 개정 법률안’ 발의돼 있습니다. 이 법의골자는 한의약의 정의를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고유의 한의약 원리를 토대로 하되 이를 현대적·과학적으로 응용· 개발한다’는 취지로 새롭게 규정, 한방 의료의 현대화와 과학화를 중점 추진한다는 정신이 담겨있습니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관련법의 뒷받침을 통해 한의약의 세계화 실현에 한발 다가서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한의약이 문화 유산적 가치로서의 우수성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실용의학으로서 세계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책임지는 핵심 의료로 발돋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정경진 경기도한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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