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밑바닥에 있는 것처럼
가슴이 무거운 돌멩이로 채워지고
빗방울도 연잎도 나를 감싸주지 못하는 날
뼈마디가 녹는 사랑이 있어서
열매와 꽃을 떠나보낸 나무처럼
헐렁한 몸에 새겨지는 주름들을 보네
아름다운 열매와 꽃으로 흔들리던
세상 너머의 또 다른 나무를 생각하네
빈 몸에 채워지는 따사로운 햇살과
낡아가는 기억들을 일으켜 세우는 바람
한때는 큰 나무의 견고한 뼈마디였고
한때는 살이었고 피돌기였다네
그 나무를 지탱시키던 은빛 이파리였다네
이제는 늙어버린 나무를 위해
꽃이 지는 소리에 어두운 귀를 캄캄하게 열어놓는
내 몸은 조금 더 헐렁해져도 좋겠네
꽃과 열매가 떨어진 헐거운 그 자리에
신화의 바람이 다시 채워지고 있네.
박현솔
제주도 출생. 동국대 대학원 문창과 졸업
아주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1999년 한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01년 현대시 신인상 수상.
한국경기시인협회·수원시인협회 회원.
시집 <달의 영토> <해바라기 신화>해바라기> 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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