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또는 불법 영업에 따른 저축은행의 퇴출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난 18일 터진 토마토저축은행의 영업 정지 소식은 사뭇 달랐다. 업계 2위, 3조8천억여원의 자산 규모, 굴지의 대형 저축은행 등 그동안 이 은행에 줄줄이 붙었던 ‘신뢰감’ 넘치는 수식어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수식어를 믿고 푼푼이 모은 돈을 맡겼던 예금자들의 충격은 엄청나다. 예금자 가운데는 노후 자금 대부분을 예치해 그 이자로 근근히 생활해온 노부부에서 건실성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다른 소규모저축은행에서 이 은행으로 예금을 갈아 탔다가 뒤통수를 맞은 직장인까지 사연도 다양하다. 억울함에 분통을 터뜨리는 이들 대부분은 단 0.1%의 이자에도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서민’들이다.
때문에 이 은행에 대한 ‘믿음’의 깊이만큼이나 ‘배신감’의 파고도 높다.
그러나 예금자들을 정말 분노케 만든 것은 이 은행을 비롯한 대부분 영업 정지 은행들의 ‘나몰라라’식 사후 대응이다.
영업 정지가 발표된 당일부터 적어도 다음 날 오전까지 답답한 마음에 은행으로 몰려간 이들은 굳게 잠긴 문앞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고, 수십통씩 전화를 건 예금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통화중’ 음이나 자동응답 멘트 뿐이었다. 더욱이 19일 오전까지 토마토와 에이스 등 대부분 저축은행 홈페이지는 영업정지 관련 경영개선명령 공고문이나 사과문은 고사하고 인터넷뱅킹 등 업무가 정상 진행되는 듯한 평소와 다름없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또 토마토측이 마련한 줄 알았던 설명회에 몰렸던 예금자들은 막상 은행관계자들 모습이 보이지 않자 욕설을 쏟아내기도 했다.
적어도 은행측의 성의있는 설명을 기대했던 예금자들은 그 어느 곳에서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고객들을 끌어 모을 때의 달콤한 설명도, 친절했던 미소도 사라진 자리엔 예금자들의 분노와 좌절감만
남았다. 이번에 ‘퇴출 도마’위에 오른 저축은행 대부분은 자산 대비 부채 규모 등 수치적인 결격 외에 고객을 끝까지 책임지는 사후서비스와 윤리 경영에서도 낙제점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올해초 불거진 삼화와 부산저축은행 사태 이후 저축은행 예금자들이 최소한 자신들의 예금을 지키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도록 부실 위험이 높은 은행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과 그 결과 공표, 위험성 사전 경고 등 제도적 장치 확충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부쩍 커지고 있다.
물론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고객들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고 ‘뱅크런(은행의 대규모 예금인출사태)’에 따른 금융기관 추가 부실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퇴출’ 충격이 반복될 때마다 국민적 신뢰는 추락했고, 예금자들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몇몇 부실 저축은행으로 인한 더 많은 건실한 은행들의 억울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예금자들의 사전 대처와 판단을 도울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 시장의 반응이다.
업계 2,3위 대형 저축은행까지 ‘퇴출 도마’에 오른 상황에서 이번에 영업정지 대상에서 제외된 6개 저축은행을 비롯해 나머지 70여개 저축은행의 경영 진단 결과도 보다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면 추가 영업정지에 대한 불안감이 사그라지지 않으리란 우려도 적지않다.
영업 정지된 7개 저축은행은 영업정지일로부터 45일안에 유상증자 등을 통해 BIS 자기자본비율을 5% 이상 끌어올리면 영업 재개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강제 매각 절차를 밟게 된다. 그리고 많은 예금자들은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판단해야할 지 여전히 떠도는 입소문이나 온라인과 지인 등을 통해 접하는 불확실한 정보에 의지하고 있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저축은행을 서민의 재테크 공간으로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한 근본적인 처방이 당장 필요하다.
정재환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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