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보면 밝아지는 세상

1970년 후반, 식목일 날을 맞아 나무심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경기도지사가 경기북부지역을 방문했다. 당시 관선 군수는 모처럼 자신이 관할하는 지역을 찾은 도백에게 잘 보일 기회를 찾다 지역 유지들과 군 간부들 앞에서 도백에게 부탁 한 가지를 했다. “지사님 모처럼 우리 군을 방문해주셨는데 지역 주민과 공무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말씀 한마디 해주시죠.” 군수는 도지사를 한껏 띄워 줄 요량으로 지사에게 인사말을 부탁한 것이었다.

 

도지사는 멈칫하다가 부탁을 무시했다가는 군수의 체면을 구길 것 같아 못이기는 척 한마디를 했다. “심조불산, 호보연자’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라며 참석자들에게 되물었다. 다들 내용을 아는 것처럼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기 시작했다. 한참 침묵이 흘렀을 때쯤 도지사는 기지를 발휘해 지금 내가 한 말을 거꾸로 읽고 의미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 아닌가? 또다시 침묵이 흐르더니 다들 박장대소하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도지사가 한 말이 고전에서나 읽었음 직한 어려운 사자성어인 줄 알고 다들 이 한자 저 한자 갖다 붙여가며 해석하려고 생각에 여념이 없던 인사들이 “산불조심, 자연보호”라는 단순한 단어를 거꾸로 말하니 그럴싸해 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날 도지사는 가장 기본적인 것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행동양식의 근본이라는 것을 참석자들에게 위트 있는 메시지로 전한 것이었다.

 

당시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까지 전해진 이 이야기에는 분명한 교훈이 있다. 그렇다. 우리는 사회가 복잡 다변화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본질적인 문제나 내실 있는 생활보다는 겉치레를 쫓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여겨질 때가 잦다. ‘산불조심’ 이나 ‘자연보호’를 거꾸로 말하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단한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이야기로 여기다가 그 뜻을 이해하고 나서는 “에이~”하고 하찮은 말처럼 치부해 버리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뿐인가? 젊어서부터 뚜렷한 직업관을 갖고 산업 현장에서 자신의 일에 땀 흘리는 사람보다는 하는 일은 변변치 않아도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을 더 우대하고, 많지 않은 수입을 쪼개어 사회적 약자와 나누는 사람보다 수십억, 수백억을 가졌지만, 재산을 지킬 줄만 아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겉치레일 것이다. 겉치레의 굴레가 우리를 구속할지라도 가끔은 한 번씩 세상을 거꾸로 보는 눈을 갖자. 세상이 새롭고, 밝아질 것이다.

오용원 경기도문화원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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