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좋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본질에 앞서 전술전략이 우선하는 정치판에서는 좋은 일이 아니다. 머리만 좋고 거기에 인성이 따라주지 않았을 때, 그 좋은 머리가 공정성을 잃고 자기편만을 위해 사용되어 결국에는 모두에게 피해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제반 문제는 본질의 왜곡과 집단 이기주의로부터 비롯되어진다. 그 결과 불쌍한 것은 학생들이다. 교육의 목표는 대학 입시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고 대학입시는 개인의 출세와 성공만을 목표로 한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병렬식 기억력 위주의 자격시험으로 합격한 사람들이 출세하여 최고의 의사 결정권을 갖는다면 이 사회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오로지 경쟁력만을 강조하고, 모든 것을 2분법으로 나누려는 세상에서 오직 네 편, 내 편을 가르고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이 나라가 앞으로 과연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실제로 모든 것을 평등하게 만들 수 있다는 시각이나 모든 것을 경쟁체제로 몰아가려는 주장은 경계해야 한다.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공정한 판단을 위해서는 좌우의 줄긋기를 허물고 본질을 알아야 한다.
이념에서 벗어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제 각각의 문제들 속에서 본질을 중심으로 360도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창조경영이다.
이제 우리는 경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좌우 어느 한 쪽에 안주하려 하지 말고 옳은 쪽이 어디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고정의 틀을 깨고 더욱 나은 제3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창조의 본질인 융합의 모습이다.
창조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창조와 모방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아무 형태도 없는 것에서는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모방을 통해 나타난다.
우리 시대의 석학인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면 “아버지는 덥다고 문을 열라 하고 어머니는 모기가 들어온다고 문을 닫으라 한다. 바로 우리의 현실은 문을 열거나 닫으라는 2분법만을 강요하고 있는데 이때 방충망이라는 창조의 문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 창조의 근원은, 문제와 문제의 틈 사이에서 섬광처럼 빛나는 생각이다. 모순의 대립각 속에서 답답함을 풀어 제치고 터져 나온 깨달음의 탄성이다.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많은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바로 그 자체가 ‘창조’의 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자기편 가르기와 소기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투쟁의 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창조와 융합은, 궁극적으로 정치의 새로운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닌가? 경기창조학교 사무총장 이청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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