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가난에 시달려 왔고 하루 세끼 걱정을 안 하고 살아온 시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는 ‘초근목피(草根木皮)’나 ‘보릿고개’가 사전에서나 찾아보아야 할 생소한 사자성어로만 보일지 모르지만, 60대 이상 된 어르신들에게는 일상에서 자주 쓰고 듣던 말이다.
우리 부모세대의 헌신적 노력과 모두의 근면, 성실 덕분에 지난 40~50년 사이에 우리나라는 저개발국에서 선진국의 반열에 서게 되었고,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발전했다.
경제적 발전 덕분에 생활수준이 향상되었고 영양상태가 양호해졌으며 또한 의학이 눈부시게 발달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의 수명이 매우 길어졌다. 1960년에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이 52세였던 것이 2010년에는 80세가 넘어서 50년 사이에 평균 수명이 28세나 늘어났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이다. 노인인구가 많다 보니 노인의 사회적, 의학적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과거에는 노인문제가 해당 가정만의 문제였다. 요즘엔 핵가족시대가 되어 결혼한 자녀가 분가하여 나가 살기 때문에 노인들이 몸에 이상이 있어도, 큰 병이 아니면, 자녀의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어 병을 키우거나 불편과 고통을 안고 그냥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조사에 의하면 노인은 젊은이보다 병을 3~4배 정도 더 많이 가지고 있어, 노인들이 병원을 찾는 일이 더 많아지게 된다. 따라서 노인의 진료비 지출이 젊은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우리나라 인구의 11%인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사용되는 진료비는 전체인구 진료비의 33.2%나 된다.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일본에서는 인구 고령화 속도가 우리보다 느려서 개인이나 국가에서 노인 의료대책을 세울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나, 한국에서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노인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고령사회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경제적 어려움이고 그다음이 건강문제라고 한다. 수명이 연장된 것은 좋아해야 할 일이지만, 노후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수명이 길어져 노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슬픈 일이다. 노인환자중에 병원에 자주 다니면서 자식들에게 누를 끼치게 되어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는 오래 살아서 미안하다고 한다.
하루빨리 의술이 더 발달하여 질병 없이 노년기를 보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오랫동안 건강하고 즐겁게 사시면서 축복을 받으셔야하는데 오래 살아서 미안하다니, 이게 왠말인가.
김현승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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