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만물의 척도는 인간이다. 15세기에 이르러 인류는 최초로 인간 스스로가 위대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스스로 진선미를 논하면서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인본주의의 시작이다.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일어난 르네상스는 문자 그대로 ‘재생(再生)’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의욕적으로 다시 해석하고 깨우치고자 했던 이 시기는 고전 학문과 그 가치에 대한 관심의 확대가 특징이기도 하다.
또한, 지동설과 항해술, 신대륙의 발견과 함께 자유와 평등사상이 잉태된 것도 그때의 현상이다. 마침내는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고 중세에서 근대로 들어서는 문명사적 대 전환점이 이룬다.
한편, 비슷한 그 시기에 아시아의 동쪽 끝 조선에서는 한 인간의 위대한 출현으로 새로운 역사가 발원하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에 동쪽에서 나타난 또 하나의 르네상스였다. ‘백성이 하늘이다’라고 선언한 세종이 인간의 본성을 긍정으로 이끌고 가축보다 못한 노비로부터 인간의 존엄을 이끌어낸 시대이기도 하다.
뿌리 깊은 나무, 세종의 르네상스는 조선의 위대한 정체성으로 조선 실록에 오롯이 뿌리를 내리고 오늘에 이른다. 조선의 시대정신과 역사는 세종에게서 기틀이 잡히고 영조와 정조를 거치면서 500년을 이어 현재에 이른다.
그러나 그 위대한 유산의 상속자인 지금 한국인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포만과 결핍을 동시에 느끼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물질적으로는 풍요를 노래하고 있고, 정신적으로는 무언가 크게 결여된 상태에서 살고 있다. 한 마디로 ‘문화영양결핍상태’이다. 성장위주의 정책과 경쟁에 내몰리다보니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내가 지금 왜 이 자리에 서 있는가, 라는 자각에서부터 진정 성공한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상태다. 이러한 혼란에도 불구하고 제2의 르네상스 징후가 나타나고 있으며 마침, 세계의 중심축이 동쪽으로 옮겨오고 있다.
제2의 아시아 르네상스는 동양의 정신력과 자연관, 또는 아우름의 융합 속에서 인간의 가치와 본질을 찾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한국, 한국에서 일본으로 문명의 흐름이 이어지던 역사적인 연결에서 이제는 동시다발적으로 ‘따로, 그리고 같이’ 독립성과 함께 문화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다.
‘배를 만들고 싶다면 먼저 목재를 가져오게 하지 말고 그들에게 바다를 그리워하게 하라’는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우리 시대에 창조가 필요하면 창조의 바다였던 세종을 다시 생각하면 된다. 특히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면 그 경계를 허무는데 문화만큼 훌륭한 매개체는 없다.
이청승 경기창조학교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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