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학교 영웅들

이용성 사회부장 ylees@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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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전 개봉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영화가 있다. 자유당 정권 시절 시골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주인공 엄석대가 충복들과 폭력성을 앞세운 권력의 형성과 붕괴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린 다소 의미있는 영화다.

 

당시 이 영화를 접한 관객들 대부분 어릴 적 겪었던 또 다른 일그러진 영웅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 내 모퉁이 곳곳에서 일어난 수많은 폭력과 다툼을 떠올리며 추억아닌 추억에 빠져들게 했던 작품이었다.

 

새삼 수십년전 한 영화를 거론하는 것은 작금의 학교 내 폭력에 대처하는 우리 어른들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영화에선 올바른 가치관으로 무장한 담임 선생의 등장으로 피해학생들을 구제했지만 현재 빚어지는 학교내 폭력으로 멍든 학생에게는 과연 누가 구세주가 될지 의문스럽다.

 

무차별적이고 지능화된 학교 내 폭력에 맞서 속수무책인 교육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근래의 학교 폭력은 극히 일부분일뿐 학교 곳곳 전반적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폭력들이 난무하고 있다. 도내 학교 폭력건수의 경우 통계에 잡힌 것만 해도 매년 1천~2천건에 달하고 가해학생수가 지난 2010년 이후 연간 5천명을 넘어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폭력의 희생양인 피해학생들의 자살로 이어지는 사례까지 따지면 심각성은 더해진다.

 

사정이 이런데도 피해학생을 보호해야 할 어른들이 내놓은 대책들은 과연 실효성이 있는 것인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경찰은 이례적으로 폭력가해학생을 구속하는 등 연일 강경책을 내놓고 있다. 교육기관은 생활인권지원센터 운영을 통해 인권옹호관, 학생자치생활지원단, 상담사를 배치하고, 일부 지역에 스쿨폴리스, 학교마다 배움터지킴이까지 배치하는 등 이름도 그럴싸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일선 학교에선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 눈치다. 사회분위기상 어느 정도 진정되는 듯 하겠지만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의 적극적인 관심은 중요한 해법이 될 수 있다. 경험적으로 교사의 관심이 아이들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가는 다시 말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며 들려준 칭찬 한마디가 아이의 장래를 결정하듯이 아무리 사제지간이 예전 같지 않다 하더라도 학생의 교사에 대한 관계는 절대적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스승은 사라지고 출근도장만 찍는 직장인만 있고, 제자는 사라지고 등교도장만 찍는 학생만 있더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교육현장이 각박해졌다.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교사에 대한 존경심의 상실, 검증되지 않았지만 인권조례에 대한 부작용 등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교사들이 일할 맛 나는 학교현장이 아니라는 의미다.

 

또 교사들에게만 너무 책임을 돌리면서 교사들은 “불의를 보면 그냥 참는다” 등 학생들의 문제를 애써 외면하는 분위기가 팽팽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가 학교폭력 가해학생을 나무라다 멱살이 잡혔는가 하면 어느 남교사는 관련 가해학생을 혼냈다가 “찔러 죽이겠다”는 등의 폭언도 당하고 있다.

 

이런 사정상 학교현장에 상담교사를 배치해 아이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부터 부당하게 교권이 침해 당한 교사를 교단이 왕따시키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보호하고 책임져 주는 모습 등 실제 교사들이 교육에 매진할 수 있는 분위기와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학교폭력을 외부적인 요인으로 보고 세우는 대책은 한계가 있다. 학교나 교사 스스로가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하고 이 기준을 집행하는 교사에게 권한을 대폭 주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형식적으로 변모된 교사들의 무관심을 아이들에 대한 절대적인 관심으로 되살려야한다.

 

제자에게 정성을 쏟는 교사가 대우받는 교단, 아이들을 자신있게 나무라는 교사가 인정받는 사회분위기 조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용 성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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