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역사학자들은 뭐했나?

박정임 문화부장 bakha@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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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민들이 정조대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던 수원8경이 사실은 일본 대중음악 작사가의 흥얼거림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것도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게 한국의 가볼만한 곳을 안내하기 위한 철도여행안내지에 싣기 위한 것이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조선 정조 당시 8경은 김홍도에 의해 그려졌다. ‘화봉팔관도(華封八觀圖)’다. 홍길주(1786~1841)가 쓴 ‘표롱을첨’에 의하면 ‘정조께서는 다시 김홍도에게 화성의 8경을 그리도록 명하였다. 정조의 명을 받은 김홍도는 춘8경 5폭과 추8경 3폭으로 화봉팔관도를 그렸다’고 기록돼 있다.

 

수원시가 지난 달 27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개최한 ‘수원 춘추8경 제작을 위한 학술토론회’에서 김용국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장은 “현재 수원시사를 비롯한 여러 서적과 기관의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수원8경은 화봉팔관도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며 “수원8경을 그림으로 제작하기에 앞서 왜곡된 내용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길주가 50세 되던 해인 1836년 ‘표롱을첨’에서 화봉팔관도의 존재를 통해 수원8경을 소개한 내용을 보면 1경 신풍사주(新豊社酒), 2경 대유농가(大有農歌), 3경 한정품국(閒亭品菊), 4경 오교심매(午橋尋梅), 5경 길야관상(吉野觀桑), 6경 서성우렵(西城羽獵), 7경 화우산구(華郵散駒), 8경 용연후월(龍淵候月)로 백성과 군사와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현전하는 수원 8경은 1경 광교적설(光敎積雪), 2경 팔달청풍(八達晴嵐), 3경 남제장류(南堤長柳), 4경 화산두견(花山杜鵑), 5경 북지상련(北池賞蓮), 6경 서호낙조(西湖落照), 7경 화홍관창(華虹觀漲), 8경 용지대월(龍池待月)로 정조 당시 8경과는 완전히 다르다. 특히 수원8경의 첫번째로 소개하고 있는 ‘광교적설(광교산 정상에서 산록까지 쌓여 있는 흰 눈)’은 수원 화성 8경이 ‘화성(華城)의 축성으로 하여 수원의 8경을 선정하였다’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1986년에 간행된 ‘수원시사’에서의 수원8경은 이미 언급한 일본의 대중가요 작사자가 정한 8경이 그려진 엽서 등을 기본으로 1927년 간행된 일본인 저술의 ‘고적(古蹟)과 풍속(風俗)’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리고 1997년에 간행된 수원시사는 1986년의 수원시사를 근거로 기술됐으니, 정조 당시 8경과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1997년 발간된 수원시사의 경우 중권과 하권이 같은 해에 발간됐음에도 불구하고 표기, 의미 등에서 서로 차이를 드러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중권에는 1경이 팔달청풍으로 기록돼 있고, 하권에는 광교적설로 표시하는 등 기술의 순서마저도 일치하지 않고 있다.

 

이는 수원의 역사를 기록한 학자들의 무관심에서 비롯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동안 수원 화성과 정조대왕에 대한 연구가 무차별적으로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조가 선정한 춘추16경을 8경으로 제작했다면 16경의 축소판이어야 한다는 데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이날 토론회에서 수원박물관 소속의 한 학예사는 수원8경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토론자는 ‘정조 연구의 대가’ 라는 사회자의 소개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이라는 듯 “현전하는 수원8경은 일본 엔카 가수가 선정한 것”이라고 시인했다.

 

그렇다면 수원시가 관광상품화를 위해 수원8경을 그림으로 제작하겠다며 올해 제작비로 3억원의 예산을 수립할 때까지 왜 보고만 있었던 걸까.

 

박물관 소속의 학예사도 아닌, 그렇다고 수원에서 정조를 빌미로 터줏대감 노릇을 해 온 화성연구회니, 정조대왕기념사업회니 하는 단체가 아닌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이라는 설립된 지 3년 밖에 안된 단체에서 이의를 제기할 때까지 왜 방관만 하고 있었는 지 궁금하다.

 

이참에 수원8경이 왜곡 전달됐다는 것만큼은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나서 8경, 아니 100경을 선정해 관광상품으로 제작해도 늦지 않다.

 

박정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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