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사회복지사가 웃어야 사회도 웃는다

새벽 두 시경에 전화가 울렸다. 제자였다. 무슨 일인가 걱정되어 반사적으로 받았다. 그는 울고 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그만두자니 그가 돌보던 아이들이 눈에 밟히고 계속하자니 힘에 부치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간 그가 사회복지사가 되었을 때가 생각났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더불어 잘사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멋진 사회복지사가 되겠노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때 그 모습이 얼마나 당차고 아름다웠는지 나는 맘껏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울고 있다. 현재 사회복지사는 21세기 유망직종으로 손꼽히는 직업이다. 2010년 사회복지사협회에 의하면 자격증을 가진 사회복지사가 48만이 넘고, 일선 사회복지기관이나 시설, 단체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는 8만 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의 현실은 암울하다. 사회복지사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한 조사에서 사회복지사의 평균 근로시간은 52시간, 한 직장에서 평균 근무기간은 2.6년, 4년제 대학 1년차 평균 연봉은 1300만원, 50%의 사회복지사가 이직을 고려 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회복지사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사회는 사회복지사가 전문가, 봉사자로서 무한 헌신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천사 콤플렉스’를 갖는다.

이런 현상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우리 사회의 사회복지 철학과 깊은 연관이 있다. 최소한의 사회복지비로 취약계층의 원조를 중심으로 하는 잔여주의적 사회복지가 우리 사회의 인식이고 이 인식에 따라 사회복지제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의 처우는 이런 사회복지제도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반면, 제도주의적 사회복지는 이와 다르다. 취약계층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을 위한 것이고 시혜가 아니라 권리로서 사회복지를 제공한다.

 

여기에서 사회복지사는 시민 일반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이들의 위상과 처우가 달라진다. 잔여주의적 사회복지에서 단순서비스 전달에 머물렀던 천사표 사회복지사는 제도주의적 사회복지에서 시민들의 욕구를 조직하고 시민들이 겪는 일체의 사회적 위험에 맞서 싸우는 용사들이 된다.

 

사회복지사의 처우는 한 사회의 사회복지 철학 및 수준과 깊은 연관이 있다. 사회복지사가 웃는다는 것은 그 사회의 시민들이 행복한 상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제자가 환하게 웃는 그런 사회를 꿈꾼다.

 

유해숙 인천시교육청 교육복지연구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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