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공무로 중국에 간 일이 있다. 일반적으로 외국에 나가면 국내에 많이 알려진 관광지나 도시를 방문하기 마련이었지만 그 땐 몇몇 중국 시골, 농촌마을을 둘러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마을 대부분은 우리나라 60년대 모습과 흡사해서인지 정겨웠다. 특히 마을마다 몰려다니는 초등학생(중국에선 소학교)들을 볼 때마다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학교를 오가며 삼삼오오 장난치면서 깔깔거리는 모습, 옷은 다소 남루하지만 해맑은 표정들,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힐끔힐끔 쳐다보면서도 도망가듯이 달려가는 모습, 사탕을 주면 냉큼 받기보다는 먼저 어색해하며 경계하는 모습, 그래도 재차 권하며 건네주면 수줍게 받고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냅다 줄행랑치는 모습, 그렇지만 저 멀리 가서는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하는 모습…. 이 모든 게 그리운 나의 어린 시절 모습들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 나는 지금 진정 행복한가?’에 대해 자문해 보았다.
작년에 한 글로벌 리서치에서 24개국 국민을 상대로 ‘ 모든 걸 고려할 때 당신은 행복하다고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꼴찌는 헝가리이고 그 다음은 한국이었다 한다. 행복하다고 한 한국인은 7%이고 경제위기로 참담한 상황에 놓여 있는 헝가리는 6%이었다니 내용으론 꼴찌나 다름없다. 반면 가장 행복한 국민이 많은 나라는 51%로 인도네시아이었다 한다.
남과 더불어 나눌 때 행복하다
한국의 작년 구매력 평가기준 1인당 소득은 3만2천달러로 5천달러에도 못 미치는 인도네시아에 비해 7배나 풍요롭게 잘 산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한국보다 7배나 더 높게 행복감을 느끼고 살고 있다 하니 예상 밖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반세기 전 한국의 소득수준은 아프리카 짐바브웨, 가나의 절반이었지만 지금은 32배이다.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25위이다. 하지만 우리는 잘살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행복해지지 않다고 느끼고 있을까? 우리는 잘 살아 보겠다는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뛰기만 했다. 저마다 행복하기 위한 수단이 부, 명예라 생각하고 평생 노력하여 마침내 그 부와 명예를 얻게 되었지만 결국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부자가 되려는 열망과 경쟁만 성행하는 사회는 행복지수가 높을 수가 없다. 사회가 안정되고 그 구성원이 행복하려면 성취감과 행복을 느낄 일들을 가정, 사회, 국가가 다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 가야 한다. 행복의 조건으로 중요하다고 여겨 온 물질들을 많이 가졌지만 우리는 그 도구를 취하는 데만 급급하여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여야 행복한지를 배우지도 보지도 못하고 자라왔기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지도층, 나눔의 모범 보여야
행복은 많은 것을 혼자 가지는 소유의 욕구를 해결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눌 때 행복한 것이다. 독점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불안이나 오만보다는 공유함의 행복과 나눔의 축복에서 오는 여유로움을 느끼지 못했기에 우리는 행복감을 기대만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정치인, 경제인, 각종 사회지도자들은 더불어 가는 삶, 나누는 삶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공동체의 삶에 동참하며, 공공의 이익과 선을 공유하게 해야 한다. 특히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보여주고자 맹목적이거나 한 때 인기에 영합하여 소탐대실(小貪大失)하는 정책들을 철저히 지양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행복을 공유해야 하는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누구의 행복을 빼앗아 어느 특정인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결코 행복감을 높여 주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해야 새로운 행복을 만들어 내고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주는지에 심혈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그 당시 중국의 시골마을, 사람들의 그 정겨운 모습을 회상하면서,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 후손들이 전통을 배우고 익히며 계승할 수 있도록 도모해주는 것이 지금 기성세대의 의무라 생각해 본다.
김정행 용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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