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뇌경색으로 지팡이에 의지하여 방안을 걷다가 꽃샘추위가 끝나자마자 수원 광교산 오르는 버스 종점에서 저수지 둑까지 개울 따라 이어진 길을 이일 저일 생각하며 걸어 내려왔다.
이 산에서 고운 빛 신령한 기운 하늘 높이 솟아올라 어둔 길 밝게 사는 크고 바른 가르침 영원무궁하다고(光華靈氣 敎訓無窮), 고려 태조가 광교산(光敎山)이라 이름 지어주었다.
지창산 중턱에는 창성사와 진각국사원조탑비가 있었고, 목은 이색(牧隱 李穡)은 그 비문에 ‘진각국사 천희(千熙)는 두루두루 냇물처럼 흘러 다녔고, 맑고 빛나기는 저 해와 같다’고 했다.
개울 건너 관어당 유허비에 자산부사를 지내신 정응정(鄭應井)은 관어당(觀魚堂), 관어정(觀魚亭)을 세웠다 하니, 개울에 뛰노는 고기를 보시며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닿고 물고기는 즐거운 듯 연못에서 뛰네’ 이 시(詩)를 읊으며 국태민안을 기원하셨겠지.
창산과 형제봉 사이에서는 ‘이때야 말로 충신이 국가의 은혜를 보답할 때’ 라며 병사에게 독전하는 김준룡(金俊龍) 장군의 외침 소리, 청나라 군사를 크게 물리친 승전의 함성 들린다.
비석거리 마을에는 망천 이고(忘川 李皐)의 제단이 있다. 임의 뜻 받들어 수원공업고등학교 세워 큰 인물 길러내는 훌륭한 후손들 바라보며 권선징악(勸善懲惡)을 즐겨 베푼 젊은 날을 즐기시겠지.
“자주 걸어야 해요, 무리하면 안돼요.”나물 파는 할머니의 정겨운 한마디, 살아가는 맛이 난다. 산기슭엔 아직 얼음장 남아있는데 양지바른 모래톱에는 무자맥질 마치고 쉬는 오리 쌍쌍이 정겹다.
‘족한 줄 아는 자는 부자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날아갈 때에는 두 발 쭉 뻗어 놀던 물 더럽히지 아니하고, 이웃을 탐내지 아니하며 제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있구나.
문암골에는 명산대천 섭렵하던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시회를 열고 즐겨 지은 시 한 수 어느 바위에 새겨져 있을 텐데. 백로 한 마리 새파란 물 위를 얕게 날라 흰빛 더욱 희니,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어머님이 지으신 시조 ‘가마귀 싸호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난 가마귀 흰 빛을 새오나니’ 떠오른다. 오늘날 어머니의 가슴도 매한가지겠지. 무엇이 그리도 바빠 달려만 온 삶이었나, 걷기 불편해서야 천천히 걸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하루 해가 즐거움 속에 저무는구나.
송홍만 법무사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