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감사

감사의 사전적 의미는 고맙게 여김 또는 그런 마음을 말한다. 자의적인 스스로의 잣대일진데 그 쓰임이 잦아서 나쁠 건 없겠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진함이 곁들어져야 할 것이다.

며칠 전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지금까지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경례”라는 주례 선생님의 말씀과 더불어 터져 나온 신부와 친정 부모님의 눈물이 식장을 잠시 숙연케 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에 대한 공감이 하객 모두에게 감동을 준 것 같다.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양존하는 만족과 불만, 긍정과 부정, 사랑과 미움 등은 자신의 선택적 결과에 따라 내 마음속의 천재성을 일깨우는 절대적인 힘이 될 수 있다.

어느 조직에서나 다양한 형태의 경쟁이 이루어지고 그 속에는 사랑과 미움이 공존한다. “저 녀석은 늘 내 우위에 있는 것일까?”, “왜 꼭 내 의견에 반대만 하고 나서는 것일까?” 하겠지만 그 원망 속에서 나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한다면 천하에 바보스러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 경쟁상대가 있기에 앞서가기 위한 노력의 계기가 되고 매사에 신중하고 준비된 마음을 갖게 된다면 이것은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될 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시너지 효과는 배가 될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흔히 긍정과 부정을 말할 때 “물컵에 아직도 물이 이렇게 많이 남아있구나” 또는 “아니 이것 밖에 남아 있지 않구나”, 또 힘든 일을 할 때 “시작이 반이다”와 “이 일을 언제 다할까?” 등의 예를 흔히 든다.

감사를 느낄수 있는 자만의 시각차다. 존 디마티니는 ‘감사의 효과’라는 책에서 9·11의 사태를 전적으로 파괴 일변도의 사태로만 보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파괴의 전쟁이 있지만 재건과 평화가 공존하고 분열과 통합, 분리와 결합, 친절과 잔혹함이 손을 마주잡고 걸어가고 있는 것으로 말한다.

이 거대한 재앙에서, 기회와 평화를 볼 수 있다는 것, 미움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것, 겸허한 자세로 되돌아 볼 수 있다는 것은 바로 긍정의 마음으로 감사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얼마 전 12명의 도의원들은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꿈을 위해 19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모두 실패를 했다. 또 이 시각 김문수 경기도지사께서는 도의원들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염불은 뒷전에 있고 잿밥에만 관심’을 두는 형국으로 행보하는 사람들, 어떻게 진정성을 담보하고 임할 수 있겠는가? 지금 처해 있는 위치와 모든 것들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 때 우리는 진정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김경표 경기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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