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를 탈출한 곰돌이

자주색을 띤 곰 모양의 풍선이 노란풍선을 들고 서있다. 정확히 말하면 곰을 형상화한 풍선의 형태를 띤 조형물이 기울어져 서 있다. 옆으로는 한적한 2차선 도로가 지나고 맞은편에는 희미하게 ‘장흥조각공원’이라 적힌 건물도 보인다. 나른한 오후의 풍경을 담은 사진 속 장소는 장흥이다.

한때 장흥은 장흥역, 일영역, 송추역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MT문화로 유명세를 겪은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북적이던 인파를 대신해 러브호텔이나 모텔 등이 도처에 자리 잡았고 말만하면 다들 알만한 국내 굴지의 화랑이 설립한 예술공원을 시작으로 양주시가 직접 운영하는 조각공원과 아뜰리에(작업장)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그야말로 문화예술의 포화지역이다.

양주시는 장흥면파출소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일대를 ‘장흥관광지’로 지정해 집중적으로 문화기반시설들을 확충해가는 모양이다. 앞서 언급한 공간들 외에도 권율장군묘, 두리랜드, 청양민속박물관, 나전칠기체험관 등 문화시설들이 주변에 들어차 있다. 교외선의 중단으로 퇴색한 장흥의 문화를 되살리고자 지자체에서 다양한 문화예술기관들을 유치했으리라 짐작은 되지만 저마다의 울타리를 치고선 예술가와 예술품을 배양하는 형색이란 어쩌다 들리는 관객이 요금을 내고서야 진입할 수 있는 성역처럼 보인다.

볼거리 제공형태의 관광개발은 도로변이나 실개천을 건너는 교량마다 넘쳐난다. 쇠로 주조된 조형물들로 넘쳐나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예술의 홍수에 빠진 느낌이다. 예술을 관광에 이용한 것인지 혹은 예술이 관광을 이용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예술이 단순 볼거리로 전락한 장흥관광지의 풍경은 기묘하다.

 

다시 이미지로 돌아가 풍선을 들고 서있는 곰돌이가 부추기는 기묘한 풍경을 살펴보자. 조형물의 이름은 ‘Flying Bear’로 2012년에 진행한 어느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Flying Bear를 포함해 총 6개의 조형물이 장흥의 활성화를 바라는 지역주민들의 니즈를 반영해 설치됐다고 한다. 주로 ‘장흥조각아뜰리에’의 소속 작가들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장흥의 ‘랜드마크’ 건설이라는 야심찬 슬로건 하에 계획됐다. 하지만 2~5m 남짓한 크기의 조형물들이 100m 간격으로 듬성듬성 설치된 것은 상징조형물이라 말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감이 있다. 더욱이 작품이 갖는 개별적 의미야 둘째 치고 맞은편 조각공원 울타리 내에 같은 형태의 곰돌이가 두 마리나 설치돼 있었다. 울타리 사이로 빼꼼이 보이는 녀석들과 도로변의 Flying Bear는 색깔만 다를 뿐 동일 작가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한 녀석만이 우리를 탈출한 것인가?

관계자는 미술관이 아닌 야외에 작품이 설치돼 대중에게 쉽게 노출되며 거리미술관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했다. 이는 공공미술이 갖는 장소 특정성이나 주변 환경과의 조화라는 기본적인 이해도 따라주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또 곰돌이뿐 아니라 프로젝트를 통해 설치된 6개의 조형물에 모두 해당되는 말이다. 도대체 위치선정은 누가 한 것인지. 정말 지역주민들이 원해서 한 것인지 의문이다. 어떤 위인께서 몇 km가 넘는 거리를 걸으며 조형물을 감상할 정도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길을 가던 차에서 내려 작품을 감상하고 가기를 바란 것일까. 그곳은 차를 세울 수조차 없는 2차선 도로다. 심지어 시속 60km 이상으로 이동하다가는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칠 녀석들을 말이다.

조 두 호 수원미술전시관 수석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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